현실판 '오징어 게임'…무규칙 격투 콘텐츠, 청소년까지 파고든다

1999년 미국 영화 파이트 클럽에는 “절대 말하지 말 것”이라는 규칙이 등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파이트 클럽’에서는 이 금기가 완전히 무너졌다. 폭력은 더 이상 음지에 머물지 않는다. 촬영되고 유통되며, 수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유튜브와 텔레그램과 같은 SNS, 각종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을 중심으로 ‘격투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스포츠와 폭력의 경계를 흐리는 이 장르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 오락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관음적 폭력 소비가 현실로 옮겨온 모습이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이른바 ‘야차룰’이 있다. 참가자 간 합의를 전제로 싸움을 벌이는 비공식 격투 방식으로, ‘날것의 진짜 싸움’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급속히 퍼지고 있다. ‘20대 노가다끼리 실제 싸움 #야차룰’이라는 영상은 조회수 1,200만 회를 넘겼다. 상의를 벗은 두 남성이 주먹을 주고받고, 주변의 관중이 이를 지켜보는 장면은 현대판 콜로세움을 떠올리게 한다.

‘야차룰’은 불교 설화 속 포식적 존재인 ‘야차’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격투기(MMA)나 복싱과 달리 보호 장비나 규정이 거의 없고, 눈 찌르기 금지 정도만 제한으로 존재한다. 이용자들은 이 같은 비정제된 ‘현실성’을 매력으로 꼽는다.

시장 규모도 적지 않다. 관련 유튜브 채널의 누적 조회수는 1억 8,000만 회를 넘었고, 개별 영상도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광고 수익 구조를 감안하면 폭력 자체가 하나의 수익 모델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흐름이 일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제작자들은 ‘참교육’을 명분으로 특정 인물을 찾아가 싸움을 벌이고 이를 생중계한다.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 영역으로의 확산이다.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는 미성년자가 연루된 실제 폭행 영상을 사들여 유통하며, 영상 제공자에게 5,000원에서 5만 원까지 대가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피를 흘리거나 의식을 잃는 장면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댓글과 후원, 공유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부 영상에는 도박 광고까지 결합된다. 폭력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인간의 본능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심리학과의 로지 더트 교수는  인간은 위협과 갈등에 본능적으로 끌리며, 폭력적 자극은 주의를 빠르게 끌고 오래 유지시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안전한 위험’ 경험이 온라인 환경에서 강화되면서, 폭력에 대한 감각이 점차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학습 효과도 작용한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의 이론에 따르면 반복적으로 노출된 행동이 보상받는 모습으로 비춰질 경우, 그것이 정상적인 행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격투가 ‘합의된 규칙’ 아래 이뤄지는 것처럼 포장될수록 시청자는 폭력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더트 교수는 미디어를 통해 폭력적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둔감화(desensitization), 정서적 반응 감소, 그리고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공격성에 대한 인식의 점진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러한 콘텐츠가 온라인에서 가시성과 사회적 관심을 통해 보상을 받을 때 모방이나 과시적인 폭력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뇌과학을 가르치는 로지 더트 교수는 AJP와의 인터뷰에서 야차룰과 같은 콘텐츠가 신경생물학적으로 편도체와 같은 위협 처리 시스템과 도파민과 관련된 보상 경로를 동시에 활성화시켜 실제 위험 없이도 스트레스와 자극을 결합한 ‘안전한 위험safe danger’ 경험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로지 더트 교수 제공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뇌과학을 가르치는 로지 더트 교수는 AJP와의 인터뷰에서 야차룰과 같은 콘텐츠가 신경생물학적으로 편도체와 같은 위협 처리 시스템과 도파민과 관련된 보상 경로를 동시에 활성화시켜, 실제 위험 없이도 스트레스와 자극을 결합한 ‘안전한 위험(safe danger)’ 경험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로지 더트 교수 제공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로자 리 교수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주변 환경, 그리고 소비하는 콘텐츠의 영향을 받아 점점 그것과 비슷해지는 경향인 '사회화 효과'(socialization effects)와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폭력적인 콘텐츠를 더 많이 소비하거나 비슷한 성향의 친구를 선택하는 경향인 '선택 효과'(selection effects)를 소개했다.

리 교수는 이러한 심리학적 경향에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결합하면 비전통적인 또는 현대적인 의미의 사회화가 발생해 폭력적 콘텐츠가 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 교수는 인터뷰 제안을 받고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폭력적인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혹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영향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2021년 영국에서 13세 소년 올리 스티븐스(Olly Stephens)가 또래 청소년들에 의해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올리는 아는 여자아이의 유인으로 공원에 나갔다가 두 소년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 사망했다. 이 사건은 SNS에서의 갈등과 메시지 교환 속에서 계획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 비극이 아니라, 청소년들 사이에서 증가하는 칼부림 범죄와 온라인 환경의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SNS의 영향으로 영국에서 청소년 칼 관련 사망은 최근 몇 년간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부모는 이후 캠페인 활동을 통해 SNS 규제 강화와 청소년 보호 정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전문가들 역시 온라인 환경과 무기 접근성을 동시에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2025년 9월 미국 유타에서 발생한 찰리 커크 피살 사건 이후, 그의 사망 장면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를 접하게 된 상황을 보도하며 잔혹한 영상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틱톡·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주요 플랫폼에서 해당 영상이 순식간에 퍼졌고,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이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했다. 부모들은 자녀가 아무런 준비 없이 잔혹한 장면을 보게 된 것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일부 청소년들은 이를 “충격적이지만 중요하다”거나 “그냥 이상하다”는 식으로 반응해 폭력에 대한 둔감화 가능성도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주목도를 높이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확산시키는 SNS 알고리즘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들은 영상을 삭제하거나 연령 제한을 걸려 했지만, 다양한 변형 영상이 계속 올라오면서 통제가 쉽지 않았고, 부모의 통제 장치 역시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폭력 영상이 통제 없이 확산되는 문제를 강조하며, 보다 강력한 규제와 함께 부모가 자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대응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법적 판단은 명확하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차룰은 '합의'가 있었더라도 법적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상해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써 주더라도 수사와 처벌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대법원이 "피해자의 승낙이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경우 위법성이 결여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을 지적했다.


싸움에 참가한 당사자만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야차룰을 관전하거나 유통하는 것도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 및 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는 게임 참가자들이 겪는 폭력을 감상하는 VIP들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는 게임 참가자들이 겪는 폭력을 감상하는 VIP들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로마의 콜로세움이 보여주듯이 폭력은 오래전부터 인간 사회의 오락 요소였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는 질적으로 다르다. 현실과 연출의 경계가 사라지고, 관객이 수동적인 소비자를 넘어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했다.

폭력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구조가 확산되는 가운데, 이를 어떻게 규제하고 특히 청소년 보호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해지고 있다.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나레이터에드워드 노튼는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와 함께 술집 지하에 취미로 격투를 벌이는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20세기 스튜디오 제공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나레이터(에드워드 노튼)는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와 함께 술집 지하에 취미로 격투를 벌이는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20세기 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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