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원칙주의자 이회창의 동반자'…한인옥 여사, 시대를 함께하다

  • '조용한 내조형 배우자'로 한국 현대 정치사 풍랑 묵묵히 견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왼쪽와 고故 한인옥 여사 사진연합뉴스
2010년 6월 함께 투표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왼쪽)와 그의 아내 한인옥 여사 [사진=연합뉴스]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의 부인 한인옥 여사가 지난 23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자주 등장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보수 정치의 중심에 섰던 이 전 총재의 곁에는 언제나 고인이 있었다. 그는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 제1야당 총재, 대선 후보를 거친 이회창의 공직·정치 인생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인물이었다.

1938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여고,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1962년 이 전 총재와 결혼한 한 여사의 이미지는 '조용한 내조형 배우자'였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과도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 여사가 '정치인의 배우자'로서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버티고 견디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오늘날 정치인의 배우자들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거나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겉은 단아하지만 속은 강단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적잖았다. 그런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선 2002년 연찬회 자리에서 고인이 "하늘이 두 쪽 나도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말 한마디가 정치적 파장이 되던 시대에 해당 발언은 큰 화제가 됐다. 단아한 이미지와 달리 정치적 의지가 강한 배우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이후 한 여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치 보복과 부정부패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고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고인의 삶은 한국 정치의 가장 격렬했던 시간을 관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남편인 이 전 총재는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린 대선,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정국,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 세대교체·지역주의 논쟁을 거쳤다. 그리고 한 여사는 그 긴 정치적 풍랑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 견뎌낸 동반자였다.

이 전 총재는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원칙주의 정치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대쪽 판사, 원칙주의자라는 평가가 따라다녔지만 때때로 그 강직함 때문에 시대 변화와 대중 정치 흐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한 여사는 그런 이 전 총재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한 여사의 별세는 우리 사회가 한 정치인의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한국 정치의 한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쪽 판사·원칙주의 정치인 이회창, 그리고 오랜 시간 조용한 내조로 그 곁을 지킨 배우자 한인옥. 고인은 그렇게 한국 현대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지나갔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6일, 장지는 광릉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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