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1.7%, 전년 동기 대비 3.6%를 기록하였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수출이 전기 대비 5.1%, 전년 동기 대비 10.3% 증가하면서 제조업 생산이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하였다. 올해 1분기 경제실적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과 금융시장 불안, 글로벌 교역 위축 우려가 있었지만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인공지능(AI) 산업 확대가 지속된다면 연간 성장률은 2.6% 내외도 가능할 것으로 OECD가 전망했다.
그러나 성장률만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물가이다. 2026년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였으며 생활물가는 3.3% 상승하였다. 특히 공업제품 물가가 4.2% 상승하면서 서민 부담을 키우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물가가 이를 잠식하면 국민은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어렵다. 정부는 에너지와 농산물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생활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 특히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식료품, 교통비, 주거비 등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환율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원·달러 환율이 여전히 1500원을 상회하는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원화 약세는 미국의 고금리에 따른 강달러,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 자본 이탈, 해외 투자 증가 등에 따른 것이다. 수출기업에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수입물가 상승과 해외여행 비용 증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통해 국민경제 전체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엔·달러 환율도 달러당 160엔대이고 너무 과한 우려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조급한 대책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변화된 국제 자본 흐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장의 양극화이다. 반도체와 일부 첨단산업은 호황을 누리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지방경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증가했지만 소비지출 증가율이 더 높아 흑자액은 감소하였다. 이는 국민들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장의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질을 높여야 한다. 즉 특정 산업과 특정 계층에 집중된 성장의 과실을 보다 넓은 경제주체들에게 확산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이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구조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도체 수출 호황과 같은 외부 성장 동력을 기반으로 내수를 강화하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청년고용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자영업자의 생산성 향상, 중산층의 구매력 회복은 모두 복지정책이나 분배정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수요를 확대하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경제성장 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소득 양극화, 일자리 양극화, 지역 양극화 문제는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니라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도권과 일부 첨단산업에 성장의 과실이 집중될수록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 구조는 약화된다. 따라서 지방 산업 육성, 지역 대학 경쟁력 강화, 중소기업 생산성 혁신, 청년층 자산 형성 지원과 같은 정책은 사회정책이면서 동시에 성장정책이다. 성장의 과실을 보다 넓게 공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성장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장의 질을 높이는 정책은 '성장 대 분배'의 선택이 아니다. 성장의 성과가 경제 전반에 보다 폭넓게 확산되도록 함으로써 소비와 투자, 고용이 함께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연 3% 수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와 AI 산업 육성과 같은 공급 측면의 혁신 정책과 함께 국민 다수가 성장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수요 기반 확충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와 호황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회복의 초입에 서 있다. 반도체와 AI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의 불씨는 살아나고 있으며, 수출과 투자도 점차 활력을 되찾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성장의 불씨를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고,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과 계층 간 성장 격차를 줄여 내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성장의 질을 높여 더 큰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2026년 한국 경제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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