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에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감각은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최송희의 B-컷'은 스크린에 담긴 'A-컷' 너머 생생한 현장이 담긴 이면의 기록을 주목합니다.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를 교차해 완성된 프레임보다 더 뜨거웠던 'B-컷'의 순간을 재구성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와일드 씽'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와일드 씽'은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재기의 기회를 잡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은 각각 트라이앵글의 리더 현우, 래퍼 상구, 센터 도미로 분했다.
'와일드 씽'에서 무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세 배우에게는 연기와 퍼포먼스가 동시에 요구됐다. 안무를 외우고 동선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관객의 호응까지 끌어내야 했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주한 것은 '가수였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무대 위에 서야 하는 시간이었다.
"춤추는 저를 본 소감은 일단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마지막 무대쯤에는 진짜 진짜 잘하는구나 싶긴 했어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 촬영 끝나고도 계속 연습하고 밤에 가서 연습하고. 무대 촬영을 계속해 나가니까 무대 경험이 쌓이더라고요. 마지막쯤 되니까 무대 짬밥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안무 안 놓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안무는 기본이 되니까 라인 살리는 데 더 신경을 쓰게 됐죠. 처음에는 노래하랴 춤추랴, 관객 호응 끌어내랴, 카메라 보랴 정신없었는데 점점 익숙해지니까 춤선이 좋더라고요."(강동원)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트라이앵글의 센터 도미 역을 맡은 박지현은 무대 위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감각으로 자신감을 꼽았다. 무대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에게 센터라는 자리는 낯설고도 부담스러운 자리였다는 부연이다.
"제가 센터라고 해서 자신감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걱정이 되기도 했죠. 무대 경험이 없기도 하고 워낙 외모가 출중한 분들이 계셔서 센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상큼하게 가자, 자신감을 가지고 가자고 생각했어요. 많은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 영상을 보면서 자의식을 없애보려고 했고 모든 걸 내려놓고 판을 깔고 즐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무 안 틀리고 동선 맞추려고 했는데, 나도 좀 심취할 걸 싶더라고요."(박지현)
폭풍래퍼 상구 역을 맡은 엄태구에게 무대는 또 다른 의미의 낯섦이었다. 상구는 완성형 래퍼라기보다 래퍼를 꿈꾸며 노력하고 부딪히는 쪽에 가까운 인물이다. 엄태구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5개월간 연습생처럼 랩과 춤을 배우며 발성, 리듬, 제스처를 하나씩 익혔다.
"랩 같은 경우는 선생님한테 100% 의지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갔던 것 같고요. 어쨌든 캐릭터가 랩을 잘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5개월 동안 제가 진짜 열심히 하면, 잘하지 못해도 그게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발성 연습부터 리듬 타는 것까지 선생님이랑 같이 했고, 계속 하다 보니 나중에는 선생님들과 대화할 때도 저도 모르게 제스처나 말투를 따라 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자연스럽게 나왔을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 끝이 없으니까, 여기까지만 하면 된다는 느낌이 없으니까 그냥 무작정 열심히 했어요."(엄태구)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세 배우가 무대에 접근한 방식은 달랐지만, 연습실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로 모였다. 특히 강동원의 연습량은 동료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지현은 강동원이 브레이크 댄스와 헤드스핀을 연습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경이로웠다"고 말했다.
"동원 선배님은 댄스에 있어서는 정말 대단했어요. 브레이크 댄스나 헤드스핀 같은 걸 연습실에서 봤는데, 짧은 시간 안에 해내는 걸 보면서 상상도 못 했던 게 되더라고요. 진짜 신기했어요.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게 하려면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어서 경이로웠습니다. 연습실에 가면 저희보다 3~4시간씩 일찍 오셔서 땀범벅이 되어 계셨어요. 개인 연습을 그렇게 하고, 저희와 또 3~4시간을 연습하시니까 6~7시간씩 연습하시는 것 같았어요.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몸을 잘 쓰시는구나 싶었고, 춤까지 잘 추는 걸 보면서 댄스 쪽으로 하셨어도 잘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박지현)
강동원이 목표로 삼은 것도 어설픈 흉내가 아니었다. '와일드 씽'은 코미디 영화지만, 그가 무대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1집 무대는 진짜 너무 잘해서 웃기자가 목표였어요. 춤선을 잘 살려서 그 당시에 댄서였다가 가수 하신 분들한테 창피하지는 않게 하겠다는 게 목표였고요. 그분들이 봤을 때 '그랬지, 내가 저랬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나 저렇게 안 했어' 이러지 않게요. 관객들이 봤을 때는 좀 어이없게, '왜 잘하지, 왜 잘해서 웃기지' 이런 느낌이길 바랐어요."(강동원)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트라이앵글의 무대가 실제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각자의 레퍼런스도 필요했다. 강동원은 고등학교 시절 TV로 접했던 1세대 아이돌의 멋과 진지함을 떠올렸고, 박지현은 핑클과 이효리를 참고해 도미가 가진 청량함과 강렬함을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
"제가 고등학교 때 TV에서 봤던 그 모습을 그대로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봤을 때 진짜 멋있었거든요.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댄스 가수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봤던 걸 그대로 하고 싶었던 거죠. 대본도 그게 맞고, 그 감성이 맞았어요. 1세대 아이돌 선배님들의 느낌을 그대로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이 보셔도 '우리 그랬지' 할 수 있게요."(강동원)
"옛날에 god도 좋아했고 핑클도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이효리 선배님을 중점적으로 봤던 게, 영화 속 도미라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트라이앵글이 1집에는 청량하고 순수한 콘셉트였다가 2집에서는 강렬하고 퍼포먼스가 화려한 이미지로 변신하잖아요. 이효리 선배님이 핑클 활동 때는 1집과 비슷했다면, 솔로 활동 때는 섹시하고 강렬한 콘셉트였기 때문에 도미 캐릭터가 두 가지를 다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박지현)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레퍼런스와 연습이 쌓인 뒤 진짜 변수는 무대 위에서 나왔다. 연습 때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았던 엄태구는 카메라가 돌고 무대가 시작되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박지현은 그 순간을 두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태구 선배님은 연습 때는 많은 걸 보여주지 않았는데 무대에 서니까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동원 선배님께서 제가 무대 체질이라고 했다는데, 저는 저보다 태구 선배님이 진정한 무대 체질 같아요. 뒤통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멤버들끼리 파트를 분배하고, 저는 여기서 윙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랩 파트에서 윙크를 백만 번 한 거예요. '내 거 뺏겼다' 싶었죠. 무대에서 날아다니시더라고요. 현역 아이돌 못지않게 귀여움이 남다른 것 같아요."(박지현)
"그 부분은 현장에서 갑자기 바뀐 부분이었어요. 선생님이랑 어떤 걸 좀 더 귀엽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다가, 제가 제스처를 연습해 둔 게 없어서 고민했죠. '귀엽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너무 공포스러웠거든요.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안 지었던 사람이 갑자기 가서 막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저질렀던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할 수 있는 귀여운 건 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작 자체는 준비된 게 하나도 없었어요."(엄태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강동원은 1세대 아이돌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잘해서 웃긴' 무대를 만들고자 했고, 박지현은 센터 도미의 자신감을, 엄태구는 상구의 어색함과 뜻밖의 귀여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 넣었다. 세 배우가 쌓아 올린 노래와 춤, 표정과 제스처는 트라이앵글이라는 가상의 그룹을 그럴듯한 무대 위로 불러냈다. '와일드 씽'의 웃음은 그 진지한 준비 위에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