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의 중기직설] 피렌체에서 발견한 K-소상공인의 미래...伊 협동조합을 말하다 

  • 150년 역사, 伊 협동조합이 가진 '연대의 힘'

  • 한-이 경제교류, 골목상권 체질 개선 시발점

이탈리아 피렌체 전경 사진정연우 기자
이탈리아 피렌체 전경 [사진=정연우 기자]

지난 4월 기자가 방문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죽 시장 거리는 특유의 퀴퀴한 가죽 냄새로 가득했다.

이곳 상인들은 노점 가판대에 진열된 가죽 제품을 선보이면서 능숙한 한국어로 관광객들의 혼을 빼앗았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적혀 있지만, 대부분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값싼 물건들이다. 상인들의 호객 행위를 뒤로하고, 가죽 시장 구석에 자리 잡은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공방 안에서는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온 장인들의 손이 낡은 작업대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거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파상 공세와 저가 중국산 모조품의 범람 속에서도 수대째 가업을 이어가며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가죽 시장을 둘러보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자본도, 마케팅 조직도 없는 골목길의 영세 소공인들이 어떻게 수백 년 동안 거대 자본에 밀려나지 않고 세계적인 명품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아남았을까. 그 답은 이탈리아 경제를 지탱한 '연대의 역사'에 숨어 있었다.
19세기부터 이어진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힘
피렌체 한 가죽공방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정연우 기자
피렌체 한 가죽공방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정연우 기자]
피렌체 장인들이 홀로 고립되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문화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었던 뿌리는 19세기 말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정착한 네트워크형 협동조합 시스템에 있다.

이탈리아는 5세기 서로마제국 멸망 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기까지 수세기 동안 도시국가 형태를 이루며 경쟁해 왔다. 중앙집권형 국가보다는 지방분권형 도시국가체제가 이어지면서 지역경제를 선도한 것은 중소기업과 소공인들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 주에 있는 볼로냐에서 그 시스템이 완성돼 시민 10명 중 7명이 조합원일 정도로 협동조합의 성지가 됐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다수의 소규모 협동조합이 하나의 연합체로 묶여 대기업 못지않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획기적인 '네트워크형 경제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공동으로 고품질의 원자재를 구매하고, 자체 기준을 통해 품질을 서로 인증하며, 해외 판로 개척과 마케팅을 함께 해결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있다. 공장을 합쳐 거대 기업을 만드는 대신, 자체 기술력을 보존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부분은 연대하는 방식으로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방패가 되어 자생력을 만들었다.
한-이탈리아, 중소기업 넘어 '소상공인·협동조합'으로 영토 확장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제1차관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그랜드 호텔 플라자에서 열린 한-이탈리아 협동조합 MOU 및 세미나 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제1차관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그랜드 호텔 플라자에서 열린 '한-이탈리아 협동조합 MOU 및 세미나' 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기자가 이탈리아에서 목격한 이 넓고 깊은 소상공인 네트워크 인프라는 이제 정부 주도로 한국 소상공인 정책과 대화의 선을 잇게 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기업·메이드인이탈리아부(MIMIT)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협력 양해각서(MOU)' 교환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의 가장 큰 차별점은 기존의 첨단 벤처나 대기업 중심의 외교적 틀에서 벗어나 협력 범위를 '제조 기반 소상공인'으로 확대했다는 점에 있다. 양국은 이탈리아 경제의 모태가 되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분야의 경제·기술 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관가에서는 이탈리아가 다져온 협동조합이 국내 소상공인 생태계와 실질적인 교류를 하면서 한국 시장에 접목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중기부 역시 이탈리아와의 이번 협약을 통해 침체된 골목상권의 체질을 바꾸는 실질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양국 소상공인 분야의 상생을 위해 이제 막 물꼬를 튼 출발점"이라며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나 개선점은 후속 실무협의를 통해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시에서 이탈리아 최대 협동조합 연합회인 레가코프 볼로냐 지부 관계자들과 지역경제 상생 사례 청취 등 성장 방안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시에서 이탈리아 최대 협동조합 연합회인 레가코프 볼로냐 지부 관계자들과 지역경제 상생 사례 청취 등 성장 방안을 모색하는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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