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기후위기와 산사태, 그리고 정상화 편향

 
강원대 전근우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전근우
전국이 산사태 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산사태 피해를 겪고 있는 것일까? 자연재난은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를 줄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방심과 둔감함인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는 이제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경남 산청·합천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산사태가 발생했고, 경기 가평에서는 짧은 시간에 쏟아진 극한강우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과거에는 '이례적'이라고 여겼던 기상현상이 이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극한강우가 빈번해지면서 과거의 경험과 통계만으로는 위험을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지역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 규모도 대형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체계를 재점검하고,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사방사업 등 산사태방지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변화된 강우환경을 고려한 사방시설의 설계기준 강화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기상관측 이래 최고 강우량 기록이 매년 경신될 정도로 강우 강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산림청이 최근 5년간의 극한호우 자료를 사방사업 설계에 반영하도록 기준을 강화한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시설 설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방댐 등 기존 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점검과 유지관리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시설이라도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설계 당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사방사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유역 특성과 강우패턴 변화에 적합한 사업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사방사업은 개별 시설 설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역 전체를 고려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산림유역의 물 흐름과 토사 이동 특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산림청에서는 산림 수문모델 개발과 산림유역의 물수지 정보를 구축하는 '산림수계수치지도'를 전국 단위로 구축하고 있으며, 토사 이동을 관측하기 위한 하이드로폰 설치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가 축적된다면 사방시설의 규모와 위치를 더욱 과학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사태 위험 예측의 정확성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산림재난 대응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과 기술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산사태와 토석류, 땅밀림 등 산지토사재해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이지만 관련 기술인력은 고령화되고 있으며 신규 인력의 유입도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축적된 현장 경험과 전문기술이 단절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인력 양성과 기술 전승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산림재난의 유형과 규모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국제적 기술 교류를 통해 새로운 대응기술을 확보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최근 출범한 한국산림재난안전기술공단에 거는 기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산림재난은 단순한 시설 설치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조사와 분석, 예방과 복구, 연구와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는 종합적인 분야이다. 앞으로 공단이 산림재난 관련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현장 중심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축적·발전시키며, 과학적 조사와 연구, 국제적 기술교류를 통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산사태 대응기술을 확보하는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재해심리학에서는 위험이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위험을 인지한 이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을 '정상화 편향(Normalcy Bias)'이라고 한다. 특정 지역에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지금까지 큰 피해가 없었던 지역일 수 있다. 과거에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후위기가 새로운 일상이 된 지금, 산사태는 더 이상 일부 산간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 위험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방정부의 철저한 대비책과 함께 '내가 사는 지역도 언제든 위험할 수 있다'는 국민 개개인의 경각심이 더해질 때 비로소 촘촘한 안전망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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