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窓)] 현해탄 100년, 사랑은 여전히 그 바다를 건너고 있는가

서해안 일몰 사진정종우 기자
서해안 일몰. [사진=정종우 기자]


100년 전이다. 1926년 8월 4일 새벽, 일본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연락선에서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은 현해탄으로 몸을 던졌다.

그날 이후, 바다는 오래도록 한 이야기를 품게 됐다.

사랑이 끝내 닿지 못했을 때, 사람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조선은 식민지의 불안 속에 흔들리던 시대였다. 신여성과 자유연애라는 낯선 언어가 막 세상 밖으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온전히 축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비난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랑과 관습, 예술과 현실이 충돌한 시대의 사건으로도 받아들여졌다.

누군가는 비난했고, 누군가는 그들을 시대를 너무 앞서간 사람이라 말했다.

그리고 한 세기가 흘렀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만큼 세상도, 사랑의 방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사랑은 늘 무엇인가를 넘어야 했다. 가족을, 체면을, 시대를 건너야 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드는 일이었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도 그 노래 속 감정이 지나칠 만큼 뜨겁고 선명해서다. 삶과 사랑, 그 모두를 흔들었던 시대의 불안이 노래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사랑은 조금 다르다.

연결은 훨씬 쉬워졌다. 휴대전화 하나면 언제든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관계는 더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읽고도 답하지 못한 메시지들, 깊어지기 전에 멈추는 마음들, 상처받기 전에 스스로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결혼보다 생존이 먼저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람보다 혼자가 편한 시대라고 말한다. 사랑조차 효율과 불안을 계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마음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사랑은 쉽게 끝난다기보다, 깊어지기 전에 멈춰서는 경우가 더 많다.

100년 전, 두 사람은 현해탄 한가운데서 사라졌다. 그리고 100년 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한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오래 망설이고, 조금 더 조용히 마음을 접을 뿐이다.

그 바다는 아직 그대로인데, 끝내 건너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현해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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