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은 읽기 어렵습니다. 내 집 마련 역시 어렵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려운 ’부’동산 ’바’로보기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폐버스를 청년 임시주택으로 활용하자는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이 논란이 된 지 며칠 만에 정부는 고시원 방의 욕조 설치 금지 규정을 풀겠다고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저주거기준 개정과 고시원 등 비주택 거처 개선을 주문한 바로 다음 날이다. 이튿날에는 고시원을 포함한 준주택 사업에 금융지원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폐버스 제안이 당의 공식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도 무려 국토위 소속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내놓은 정책 제안을 사적인 생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폐버스 제안과 고시원 정책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고시원 기준 개정안도 폐버스 논란이나 대통령 발언 전인 지난달부터 관련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두 사안은 같은 질문을 남긴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청년과 저소득층에게 집이 아닌 공간을 어디까지 내놓아도 되는가.
주거로 쓰인다며 욕조부터 푼 국토부
국토교통부가 지난 12일 행정예고한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 개정안은 고시원 개별 방의 욕조 설치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다. 책상 등 학습시설을 갖추도록 한 의무도 없앤다. 방 안 취사시설 금지는 유지된다.
책상 의무를 없애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다. 현행 다중이용업소법 시행령은 고시원업을 ‘구획된 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으로 정의한다. 건축기준에서 학습시설 의무만 지우면 법령 간 정합성 문제가 남는다.
국토부는 고시원이 학습시설보다 1인 가구의 거처로 이용되는 현실을 반영하고,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욕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것도 아니어서 선택지를 넓히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책의 순서는 따져봐야 한다. 국토부는 2015년 현행 기준을 만들면서 욕조와 취사시설, 발코니를 금지한 이유로 고시원이 독립된 주거시설로 편법 이용될 가능성을 들었다. 11년 만에 고시원이 실제 주거공간으로 쓰인다는 이유로 그 구분선을 일부 걷어내는 셈이다.
그렇다면 욕조만 허용할 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에 필요한 조건도 함께 살펴야 한다. 욕조까지 허용하는 만큼 방과 욕실의 환기 기준이 충분한지 점검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는 최소 면적이나 외부 창문, 환기 성능을 강화하는 내용이 없다. 주거 현실은 인정하면서 정작 필요한 주거 기준은 보강하지 않았다.
개정안에는 규제영향분석서도 첨부되지 않았다. 국무조정실 사전협의에서 규제심사 비대상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절차상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욕조 허용이 고시원 설계와 향후 공급, 거주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한 내용은 공개된 행정예고 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 7㎡, 대전 14㎡…주소 따라 달라지는 최저선
고시원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조사로 확인됐다. 서울시의 2020년 조사에서 고시원 방의 평균 면적은 7.2㎡였다. 전체의 53%는 7㎡에도 못 미쳤다. 비상시 탈출할 수 있는 창문을 갖춘 방은 47.6%에 그쳤다. 거주자들이 꼽은 주요 불편과 건강 위험도 비좁은 공간과 채광·환기 부족이었다.
서울시는 뒤늦게 새로 짓거나 용도를 변경하는 고시원에 방 면적을 7㎡ 이상으로 확보하도록 했다. 개별 화장실을 포함하면 9㎡ 이상이어야 하며 외부로 대피할 수 있는 창문도 설치해야 한다.
일부 광역지자체는 더 높은 하한선을 두고 있다. 대전은 방을 14㎡ 이상으로 하고 여닫을 수 있는 1㎡ 이상의 창문 설치를 의무화했다. 광주는 방 11㎡ 이상, 욕실을 포함하면 전체 14㎡ 이상으로 정하고 외부에 면한 개폐식 창문을 두도록 했다. 세종도 11㎡ 이상의 면적과 채광·환기·피난이 가능한 외창을 요구한다.
면적 산정 방식과 적용 대상이 달라 어느 지역 기준이 우월하다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최소 면적과 창문 기준을 따로 마련하는 동안 국가의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에는 방별 최소 면적과 외창에 관한 전국 공통 하한이 없다는 점이다. 고시원을 어느 지역에 짓느냐에 따라 최소 면적이 두 배까지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1인 가구에 방 한 칸과 전용 부엌, 화장실·목욕시설 등을 포함해 총주거면적 14㎡ 이상을 요구한다. 고시원 방 7㎡와 단순 비교해 기준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시원은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어서 이 기준이 건축허가에 직접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실제로는 사람이 장기간 거주하지만 주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거의 최저선 밖에 머물러 있다.
고시원은 소수의 예외적인 거처도 아니다. 국토부의 2022년 조사에서 고시원·고시텔 거주 가구는 15만8374가구로 비주택 거처 가운데 가장 많았다. 2017년 조사에서는 고시원·고시텔 거주 가구의 97%가 1인 가구였고 가구주 평균 나이는 34.6세였다. 2022년 조사에서는 32.9%가 더 싼 월세를 구하지 못해 고시원을 택했다고 답했다. 고시원의 주거환경은 청년과 저소득 1인 가구의 주거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규제 풀고 금융지원…공급 늘면 누가 책임지나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후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최저주거기준 개정을 검토하고 고시원과 비닐하우스·판잣집 등 비주택 거처의 환경을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다음 날 국토부는 욕조 규제 완화를 예고했고, 13일 발표한 공급대책에는 서울·경기 고시원 등 준주택 PF 사업장의 대출이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겼다.
2027년까지 착공하면 대출금리의 1%포인트, 2028년까지 착공하면 0.5%포인트를 재정으로 보조한다. 고시원만을 위한 정책도, 청년 전용 지원도 아니며 일정한 사업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규제 완화와 금융비용 지원이 맞물리면 신규 고시원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고시원을 공급대책의 지원 대상에 넣었다는 점은 정부가 이를 주택 부족을 보완할 공급수단으로 인정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규제 완화와 싼 자금이 공급을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는지는 도시형생활주택이 보여줬다. 정부는 2009년 1·2인 가구의 주거공간을 신속히 늘리겠다며 부대·복리시설 기준을 풀고 국민주택기금으로 건설자금을 지원했다. 인허가 물량은 2010년 2만529가구에서 2011년 8만3859가구, 2012년 12만3949가구로 급증했다.
소형주택 수요를 채운 성과는 분명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과잉공급과 미분양, 주차·관리 문제가 뒤따랐다. 2015년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는 좁은 진입로와 동 간 거리, 스프링클러 사각지대 등 안전 문제를 드러냈다. 공급을 서두르며 충분히 살피지 못한 비용은 결국 거주자들이 떠안았다.
생활숙박시설은 숙박시설이면서 취사와 분양이 가능해 주거상품처럼 팔렸고, 불법 주거 전용과 용도변경 갈등을 낳았다. 정부는 이제 신규 불법 전용을 차단하고 기존 시설의 합법 사용을 지원하고 있다. 반지하도 주택난 속에서 지하층 거주를 허용하고 지하층 인정 기준을 완화한 결과가 수십년 뒤 침수와 채광·환기 문제로 남았다.
고시원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당장 저렴한 방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고시원마저 사라지면 더 열악한 거처로 밀려날 수 있다. 문제는 공급을 늘리는 것과 낮은 수준의 주거를 제도화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
정부가 고시원을 청년과 저소득 1인 가구의 거처로 인정하려면 최소 면적과 외창, 환기, 화재·피난 기준부터 전국 공통선으로 세워야 한다. 공공의 금융지원도 이 기준을 충족하는 시설에 한정해야 한다. 개정안대로 확정되면 새 기준은 고시 발령 이후 건축허가·건축위원회 심의·건축법상 변경허가를 신청하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기존 고시원의 좁은 방과 무창실을 바꾸는 대책은 아니다.
최소 기준을 마련한다고 고시원이 청년주택을 대신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 기준은 고시원을 주택으로 격상시키는 면허가 아니라 더 열악해지는 것을 막는 하한이어야 한다. 고시원이 임시·보완 거처라면 공공임대 등 적정한 주택으로 옮겨갈 출구도 함께 넓혀야 한다.
공급이 급해도 사람이 사는 공간의 최저선을 낮춰 물량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것은 주택 공급 부족이지 주택의 기준을 낮추는 일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폐버스나 욕조만 더해진 좁은 방이 아니라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다. 정부는 청년이 어디에 살기를 바라는지 공급 숫자가 아니라 주거 기준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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