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과 국회는 직접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진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는 3부의 한 축인 사법부 최고 수뇌부 구성은 결국 국가원수가 임명할 수밖에 없다.
한국헌법사에서 사법부 구성은 변화를 거쳐 왔다. 제1공화국헌법에서는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제78조)라고 규정할 뿐 대법관 임명절차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이에 법원조직법에서 법관회의의 제청에 따라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여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제2공화국헌법에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이를 선거하고 대통령이 확인한다”(제78조). 즉 민주회복이라는 시대상황에 발맞추어 제한적 인원이 참여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한다. 제3공화국헌법에서는 “①대법원장인 법관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대통령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이 있으면 국회에 동의를 요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임명하여야 한다.”“②대법원판사인 법관은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경우에 제청이 있으면 대통령은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제99조). 즉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 임명에 법관추천회의를 거치도록 한다. 그런데 제4공화국 유신헌법에서는 “①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②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03조)라고 하여 법관추천회의 절차를 생략하였다. 또한 대법관뿐만 아니라 모든 법관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5공화국헌법에서도 비슷하다. “①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대법원판사는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행헌법에서는 대법판 임명절차에 국회의 동의절차를 추가하였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헌법 제104조 제2항).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04조 제1항).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임명절차에 관하여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별다른 논란이 제기되지 아니한다. 즉 제2공화국의 선거인단 제도를 제외하고는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 또는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만 법관추천회의의 제청 또는 동의를 얻는지 여부에 차이가 있다.
둘째, 현행헌법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을 어떻게 조화롭게 운용할 것인가가 한국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한 시금석이다. 논란의 초점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대통령이 수용하느냐의 여부로 귀결된다. 87년 체제에서 9명의 대통령 교체와 그중에서 5번 정권교체 과정에서 대법원장과 대통령 사이에 대법관 임명절차에서 잡음과 불협화음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당연직 추천위원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조정자 역할을 한 적도 있다. 대통령 재임 중 임명된 대법원장 시기에는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 협의하는 과정이 비교적 원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장 재임 중 대통령이 교체되었을 경우에는 제청과정에서 갈등이 현실화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제청된 후보가 스스로 사퇴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제청과정에서 유력한 후보가 사퇴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청권자인 대법원장의 뜻보다는 최종적인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이 더 강하게 작동한 것 같다. 아무튼 우여곡절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합의하여 후보가 제청되었다.
셋째, 이번과 같이 대법원장과 대통령 사이에 협의가 결렬된 사례는 없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김민기·박순영·손봉기·윤성식 4인 모두 현직 고위 판사다. 대통령은 김민기 판사의 제청을 원한 것 같다. 여당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청와대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김 판사의 남편인 오영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였기 때문에 부부가 각기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 것 같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에서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여 재판소원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내가 대법원에서 한 사건을 남편이 헌법재판소에서 재판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제척·기피사유로 헌법재판관 9명의 완전체가 아니라 1명이 빠지는 재판이 된다. 그런 점에서 대법관, 헌법재판관 부부는 법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민정서상으로도 부적합하다.
이에 대법원장과 대통령 사이에 대화가 결렬된 상태에서 대법원장은 추천된 후보 4인 중에서 손봉기 판사를 제청하였지만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한 상태다. 대통령이 손 판사 제청을 거부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지방법원장까지 역임한 우수한 향판으로 알려져 있어 개인적으로 결격 사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까지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에 응답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법부 독립을 연이어 강조한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는 경우에는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한다”(제41조2 제7항), “추천위원회가 제6항에 따라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제8항)라는 규정에 비추어보면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동일한 퇴임 대법관에 대한 추천이기 때문에 새로 추천위를 구성하지 아니하고 기존 4인 중 3인 중에서 추천한다고 해서 반드시 위법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대법원장은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서 추천하든지 아니면 기존 후보자 3인 중에서 추천하여야 한다. 다만, 정부여당이 3인 중에서 추천을 요구하므로 새 추천위 구성도 쉽지 않다. 만일 새 추천위에 당연직인 법무부장관 등 친정부 위원들이 응하지 않을 경우에 더 큰 분란을 초래할 수 있다. 참으로 대법원장이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에 비타협적인 극단적 상황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타협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도 특정인을 고집하기보다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의견을 모아야 한다. 대통령이 원하는 판사는 남편이 헌법재판관 퇴임 후 임명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2027년 6월 현 대법원장의 퇴임 후 호흡이 맞는 새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또한 2028년부터 현 대통령 재임 중 대법관이 해마다 4인씩 증원된다. 만약 202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다면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동의를 요청한 후보가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한 남은 3인의 후보 중에서 1인은 고등법원 내란재판 특별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어렵다. 김 판사를 제외한다면 결국 1인만 남는다. 이분 또한 현직 중앙선관위원이기 때문에 6·3지방선거 관리에 따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겸직으로 비상임 위원직을 수행한 점과 위원으로서 본인의 귀책사유는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법관 취임에 결격사유가 되지는 아니한다. 대통령은 재제청을 요구하고 대법원장은 추천위 재구성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극단적 대립보다는 박순영 후보를 제청하는 타협안이 파국을 면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1988년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명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의 낙마는 귀감이 되는 사례다.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의 헌법재판관 중에서 1인은 여당이, 1인은 야당이, 1인은 여야합의로 선출하는 관행이 잘 작동하는 바와 같이 대법관 임명에 있어서도 법원, 국회, 대통령의 3부의 조화로운 합의가 절실히 요망된다. 그것이 현행헌법이 요구하는 대법원 구성에서 있어서의 3권분립 정신이다. 만약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비타협적 갈등이 지속된다면 결국 현 대법원장의 퇴임 후까지 새 대법관이 임명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2026년 3월 이후 2027년 6월까지 사상 최장기 대법관 공백사태가 계속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사건 적체에 시달리는 대법원이 더욱 “지연된 재판은 정의가 아니다”라는 부정의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귀결된다. “이기려면 버리라”라는 속설을 되새겨 볼 시점이다.
헌법정책적으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삭제하고 다른 방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국회와 대통령에게 무조건적으로 맡기는 것도 상책은 아니다. 이미 시행한 바 있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대법원장 임명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추천위원회를 거치는 것이 좋다. 다만 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법치주의의 지속가능성은 사법의 안정을 통해서만 담보할 수 있다.
최고법원의 구성과 최고법원 법관의 구성 방식과 숫자는 나라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미국연방대법원은 9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연방국가의 특성상 각 주마다 주 대법원이 있으므로 사실상 헌법재판기관으로 보아야 한다. 연방대법관은 상원의 인준절차를 거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경우에 결국 대통령이 선호하는 인물 즉 정치적 지향성을 같이하는 인물을 임명하기 마련이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의 대결에서 민주당 주지사가 임명한 주 대법관이 다수인 플로리다 주 대법원에서는 수개표 계속을 명했다. 반면에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연방대법관이 다수인 연방대법원에서는 수개표 중지를 명함에 따라 득표수에서 앞선 앨 고어 대신 선거인단에서 우위를 차지한 부시 후보가 당선되었다. 독일에는 5개의 연방법원이 있지만 연방헌법재판소가 유일한 최고법원이다. 연방헌법재판관의 임명에는 연방 상원의원과 하원 추천위원회(12인)에서 각기 3분의2 이상을 득표한 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의원내각제인 독일에서 재판관의 실질적인 임명권은 의회가 가지고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이다. 반면에 대통령제인 미국에서 의회의 인준절차를 거치지만 대통령의 임명권이 실질적 권한이다. 한국도 향후 개헌 시에는 최고법원 구성에 있어서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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