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연단에서 발생한 총격과 육영수 여사의 서거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국가적 비극이다. 당시 수사와 재판을 거쳐 문세광이 범인으로 처벌되었고, 그에 관한 사법적 판단도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의혹과 해석이 줄곧 제기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들이 단순한 역사적 논쟁의 차원을 넘어 영화와 예술적 창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다시 대중 앞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이나 음모론을 자극적으로 재구성하여 관객의 호기심을 끄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나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그것이 실제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의 법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라 하더라도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에는 형법 제308조의 사자명예훼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생존 인물에 관한 허위사실의 적시는 일반적인 명예훼손 책임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실과 다른 묘사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형사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된 내용이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는지, 그것이 허위인지, 제작자가 그 허위성을 인식하였는지, 나아가 작품의 전체적 맥락과 예술적 표현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조금 다르다.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별개로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창작자가 어느 정도의 윤리적 절제와 배려를 보여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역사적 논쟁을 사상의 자유로운 경쟁에 상당 부분 맡기는 미국식 접근이 한국 사회의 역사적·도덕적 감수성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범죄 영화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불문율 말이다. 이는 최소한의 인간적 선을 넘지 말자는 하나의 경고이기도 하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진영 논리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을 쏟아내는 정치권의 소모적인 공방과 대립을 확대 재생산하는 예술도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당사자와 달리 그 곁에서 희생되었거나 상처를 입은 가족과 유족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오늘날에도 크게 엇갈린다. 그러나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그의 가족과 후손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그 후손의 삶을 불필요하게 뒤섞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유족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전직 대통령과 비운의 영부인을 검증되지 않은 의혹의 소재로 다시 끌어들이는 영화적 접근은 창작의 자유를 지나치게 앞세운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표현이 반드시 윤리적으로도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육영수 여사의 서거가 온 나라에 안긴 충격은 실로 막대했다. 당시 많은 국민에게 그의 죽음이 남긴 충격과 슬픔은 오늘의 세대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흔히 사람의 뒷모습은 쉽게 꾸미기 어렵다고 한다. 운구차가 청와대를 떠날 때 말없이 차체를 쓰다듬던 박정희 대통령의 뒷모습은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 오래 남아 있다. 그 모습에서 정치적 평가를 떠나 한 사람의 남편이 배우자를 잃고 느끼는 깊은 슬픔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슬픔과 국민적 추모의 기억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아무런 제약 없이 창작의 소재로 소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이 등장하는 '용의 눈물' 드라마나 세조의 계유정난을 소재로 한 '왕과 사는 남자'와 같은 영화를 비교적 자유롭게 예술로 소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들이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당사자나 유족의 직접적인 비극을 넘어 역사적 객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사료라는 일정한 틀 안에서 다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간의 풍화 작용을 거치며 사적 고통이 역사적 담론으로 전환된 이후에야 비로소 픽션의 상상력이 비교적 자유롭게 설 공간이 생긴다.
그러나 불과 50여 년 전 현대사 비극은 다르다. 참상을 직접 목격한 세대가 살아 있고, 사건으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경험한 유족과 관계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수사와 재판을 거친 역사적 사건을 기존의 사법적·역사적 기록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면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예술적 재해석인지 아니면 자극적인 극적 재구성인지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불가피하다. 표현의 자유가 역사적 비극을 재해석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그 권리를 반드시 지금, 또 반드시 자극적인 방식으로 행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은 창작자가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을 정한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이 언제나 그 법적 최저선과 같을 수는 없다. 형사처벌이나 민사책임을 피했다고 해서 역사적·도덕적 책임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그 비극을 자신의 아픔으로 기억하는 유족과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창작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자극적인 각색에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설령 픽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표현이 남기는 인간적·도덕적 문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영화평론가 앤 호너데이(Ann Hornaday)는 실화에 기반한 영화가 사실성과 허구성 사이에서 갖는 긴장을 지적한다. 실화에 기반한 영화의 시작이나 끝 무렵에는 ‘Based on a true story’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true story’는 실제 사실에 근거한다는 권위와 신뢰를 부여하지만 ‘based on’이라는 표현은 사건의 선택, 변형, 재배치와 인물과 상황의 각색과 창작을 허용한다. 결국 실화에 기반한 영화는 사실의 권위를 빌리면서 동시에 픽션의 자유를 누리는 셈이다. 그러나 실화라는 이름으로 관객의 신뢰를 빌리고,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책임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영화가 이미 일어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세대가 그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더 흐르고 그 비극이 당사자와 유족의 직접적인 고통을 넘어 충분한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게 되었을 때 후대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그 사건을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어떤 역사를 재해석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그 권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든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으로서 창작자가 넘지 말아야 할 최저선을 정하지만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절제의 기준은 그보다 높을 수 있다. 아직 그 비극을 직접 기억하는 세대와 유족이 우리 곁에 살아 있다면 지금 메가폰을 들기 전에 한 번쯤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조금 더 기다린 뒤 더 멀리서 역사를 바라볼 다음 세대에게 그 해석을 맡기는 것도 역사적 비극을 대하는 하나의 도리가 아닐까.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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