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카드대란이 불어닥칠 당시와 비슷한 현상들이 우리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고용률과 소득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카드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점이나 정부가 내수 부양을 위해 이를 묵인하고 있는 것까지 판박이처럼 닮았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득 감소가 지속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리볼빙 등을 내재된 불안 요인으로 꼽고 있다.
◆ 소득감소·카드수요 증가…침체기 특징 = 1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3분기 전국 가구(2인 이상) 중 무직 가구 비율은 16.13%로 전년 동기 대비 13만3000가구(0.56%) 증가했다. 7가구 중 한 곳은 가구주가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3분기 고용률도 61.8%로 전년 동기보다 0.3%포인트 낮아졌다.
근로자 1인당 월 평균 실질임금은 2.7% 하락했다. 상용 근로자의 경우 실질임금이 감소한 것은 7년 만에 처음이며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실질임금도 전년 동기 대비 9.2% 하락했다.
소득은 감소하고 있지만 카드 사용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44조원 이상 늘어났다. 카드 지출을 늘려 부족한 생활자금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경기가 위축되면 신용카드 사용이 증가하게 되며 과거에도 이런 패턴이 나타난 적이 있다"며 "경기 침체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말했다.
◆ 제2의 카드대란 오나 = 물가가 여전히 4%대의 높은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침체로 가계 소득도 더욱 감소될 것으로 예상돼 자칫 카드 채권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카드 대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기 어려운 저신용계층의 카드 사용이 급증하고 있어 서민 경제 붕괴를 불러올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 초 카드사들이 카드 판매 경쟁을 벌이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의 카드 발급이 급증했다. 1분기 동안 신용등급 3~5등급에 속하는 사용자의 카드 발급건수는 100만매 이상 늘어났으며 채무 상환이 어려운 10등급의 경우에도 3300매 이상이 증가했다.
한 사람이 소지하고 있는 카드 수도 크게 증가해 9월 말 기준 경제활동인구의 1인당 카드 수는 평균 4매에 달했다.
1인당 카드 수 8~11개인 사용자는 12% 가량 늘어났으며 12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는 무려 21% 급증했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실질 소득이 더욱 줄어들 전망"이라며 "카드 사용액이 지금처럼 계속 늘어난다면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실직자가 늘어날 수 있다"며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기가 더욱 부진해지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전업카드사 "괜찮다"…은행계는 위태 = 카드업계는 지난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신용카드 대출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한 만큼 리스크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카드대란이 다시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5개 국내 전업카드사의 3분기 순이익은 44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영업수익은 7055억원 늘어난 반면 영업비용은 5966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업카드사의 연체율도 3.28%로 전 분기 대비 0.15%포인트 하락했으며 연체채권 규모는 1조3654억원으로 같은 기간 3.01% 줄어들었다.
그러나 올 들어 판매 확장에 주력한 은행계 카드사를 포함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15개 은행겸영 카드사의 3분기 연체율은 1.66%로 전 분기보다 0.17%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0.27%포인트 높아졌다.
우리카드의 연체율은 1분기 1.63%에서 3분기 2.16%로 무려 0.53%포인트 급등했으며 KB카드와 외환카드도 같은 기간 각각 0.17%포인트와 0.15%포인트 상승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인수합병(M&A)이나 사세 확장에 치중했던 은행계 카드사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카드 연체율 뿐 아니라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리볼빙 등 감춰진 수치도 문제"라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새로운 부실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김유경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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