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무성하던 개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연말부터 때로는 불만으로, 때로는 기대로 정부요직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가 많았다.
더러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점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과는 장관급 소폭에다 차관급에 무게를 실은 이명박 정부 2기 개각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발 빠르게, 입바르게 명찰을 붙이고 편 살피기도 하고 있다.
그래서 진골 전진 배치, KKK.차관정치, 홍위병의 귀환 등등의 말이 도하 온.오프라인 글방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당사자로서도 듣기 좋은 말은 아닐 것이며 중요한 인사에 대한 세평으로서도 그리 바람직한 뒷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는 세상이 너무 사납고 황폐해져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쨌건 경제팀을 새로 꾸린 데는 쉽지 않는 결단이었으리라 짐작도 되고, 제한적인 인재풀에서 길어 올릴 물이 그리 넉넉지 않아서 고민하였을 법한 흔적도 역력하다. 그럴 것이다. 전후 형국을 보면 여권이라 하여도 차 떼고 포 떼면 쓸 만한 자원은 결국 사분의 일일 것이니까.
이참에 몇 가지 짚어 보고자 하는 것이 있다. 우선 입이 아프도록 주문하고 촉구하는 소통의 정치는 아주 물 건너 간 모양이다. 소통은 내적 소통이 있고 외적 소통이 있다. 안에서의 소통이란 저희 식구. 가족, 거칠게 말하면 제 패거리간의 통함이다. 안의 소통은 ‘함께 도모함’이다.
그리고 바깥과의 소통이란 세상과의 대화, ‘저희의 도모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것으로 이른바 ‘정당성’ 이란 것을 얻고, 함께 사는 세상의 보통사람들에게 일체감내지 연대감을 주어 그들을 든든하게 한다. 그래도 살만하다 싶게 하는 것이다.
멀지도 않은 지난 연말 멱살잡이, 이단 옆 차기가 의정단상에서 난무하고, 급기야 해머에 의해 국회 회의실 문이 무참히 부셔질 때도 여당은 몇 가지 쟁점법안을 기어이 통과 시키려 했었다.
그 때는 당이 청와대 지시를 이행하는 심부름센터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당청궁합을 과시 하더니 불과 몇 주 뒤 개각을 두고는 어찌하여 이렇게 남남의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1시간 전 청와대 정례회동을 한 박희태 대표가 그 자리에서 개각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것은 이 정부 불통 벽의 두께를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또 하나는 세상에 비친 이대통령의 품안사람 껴안는 인사가 세상과의 소통보다는 자신의 길을 가는 꿋꿋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통령 독주를 확실히 확인시킨 점이다. 내 사람만 안고 나의 길을 간다.
여의도 정치는 애당초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확실히 되묻고 있는 것 같다. 정부와 의회는 견제만이 아니라 균형도 중요한 관계이다. 야당은 그렇다 치고 당청 먹통은 어찌될까. 이월 국회가 걱정된다.
이런 와중에도 의문은 또 남는다. 결과가 이런데도 당은, 더 직설로 여당의원들은 계속 입각노래를 부르고만 있는가.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국무총리를 지낸 이도 국회의원을 하고 싶은 나라에서 어째서 입각시기만 되면 국회의원들은 열일을 다 제쳐두고 전화통만 붙들고 있다는 말이 나돌까.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확실한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가 아닌지 한 번 물어 보고 싶다. 아마도 대통령의 절대 권력과 현역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을 겸할 수 있는 좀 이상한 헌법상의 권력구조가 빚어낸 정치풍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세 차관을 보내 부서를 더욱 강력하게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그것을 일제의 차관정치에 빗대어 마구 깎아내리려는 생각이나 보기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사의 황금률은 탕평(蕩平)이라고들 하지만, 본래 탕평채와 탕평책이란 그저 비빔 나물이 아니라 한 가지 나물뿐이어서 맛도 없고 보기도 싫을 때 할 수 없어서 써 보는 나물이자 정책이다. 맛이 좀 덜 하고 보기 싫어도 조금 참고 기다려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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