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공적자금 투입시 경영권 간섭문제 놓고 당정 엇박자
시작부터 불안하다. 윤증현 경제팀 출범 10일도 채 되지 않은 현재 당정이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자금경색에 몸살을 앓고 있는 금융시장에 대한 선제적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경영권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영권에 대해 전방위적 압박을 시사한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시각 차를 보였다
윤 장관은 17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금융권에 공적자금 투입 시 경영권 간섭을 최소화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융권이 은행자본확충펀드 등에 가입할 경우 경영권 간섭을 받지 않을까 꺼려오면서 시장경색이 심화돼 왔기 때문이다.
윤 장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나 금융기관과 자금 중개 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 최소한의 계약만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추경 때 관련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새 경제팀이 가장 먼저 할 것은 이런 것들”이라고 호언장담도 했다.
그러나 윤 장관의 이런 ‘큰소리’에 임 의장이 찬물을 끼얹으면서 상황은 급반전 됐다. 임 의장은 금융권의 자구노력이 수반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경영권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임 의장은 18일 “현재 금융권은 ‘눈치보기’로만 일관하고 있다”며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 하기 전에 엄정한 원칙과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또 “은행권은 고임금과 사내 복지혜택을 누르면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며 “지금의 금융권 구조는 외환위기 당시 인력감축과 국민 혈세 100조 원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만큼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의장에 따르면 현재 정부의 외화차입보증, 금리인하 등 측면지원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의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고 중기대출도 제한된 상태다. 이에 따라 금융권 대졸 초임임금 동결삭감 등 뼈를 깎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 의장은 “외환위기 때도 IMF와 정부가 나서 금융권에 메스를 들이댔다”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만 과거 33% 인력감축을 통해 체중감량을 했듯 스스로 체질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섭하기 전에 알아서 잘 하라’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이처럼 당정 경제수장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금융권은 불안에 휩싸인 모양새다.
한 은행관계자는 “사우나실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기분”이라며 “분명한 점은 공적자금은 빨리 투입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정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 그만큼 실무자와 투자자들의 불안심리 확대로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증현 경제팀 출범 시 내걸었던 ‘당정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신뢰 회복’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해진 것이다.
이와 관련,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애초 컨트롤타워의 부재 지적으로 출범한 윤증현 경제팀인 만큼 지금 같은 시기에 고질적인 정책 메시지 분산이 또 반복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당-정-청 주도로 이와 같은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기구를 신설해 권력을 이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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