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이 줄줄이 나온다.
우리 사회가 “누구누구가 포함 됐더라”는 말초적인 ‘카더라 통신’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물론 추악한 뒷거래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든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건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와의 ‘노예계약’이다.
술 접대와 성상납 사실을 밝힌 장자연씨 문건을 제쳐 두고라도 이런 사실들을 쉬쉬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부 매니지먼트사는 우회상장을 통해 거액의 불법 차익을 챙겨 구속되기도 했고, 또 어떤 기획사는 비자금을 조성, 대표가 사적으로 유용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 방송 출연을 미끼로 성상납과 뒷돈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일부 방송 관계자들의 몰염치도 가관이다. 현실이 이러니 매니지먼트사가 힘없는 여자 연예인을 추악한 뒷거래에 동원하는 행태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시세말로 놀기 좋은(?) 연예계에 일부 함량 미달자들이 판을 흐려 놓은 것이 사실이다. 젊은 연예인들도 문제다. 오로지 돈과 인기를 위해선 ‘눈 한 번 감으면 된다’는 그릇된 윤리의식이 문제다.
곪을 대로 곪았다 심심찮게 터지는 이런 사건들을 단순한 연예계의 치부로 떠넘기기에는 사회적 파장이 너무 커다. 청소년들에겐 연예인들은 우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사회의식이 마치 ‘필요악’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면, 우리의 내일은 암담할 수 밖에 없다.
사회는 연예인들에게 공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는 것도 사회적 의무이다.
경찰수사도 불만이다. 19일 브리핑에서도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실명 명단 확인을 계속 거부하고 있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고인의 자필로 확인된 ‘장자연 리스트’로 재수사에 착수했던 경찰이 또 다시 서둘러 봉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경찰 입장에서는 리스트의 무분별한 인터넷 유포도 큰 문제이겠지만, 수사의 큰 물줄기는 연예계의 노예계약을 뿌리 뽑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경찰은 관련자 소환을 통한 철저한 수사로 불법성을 명확히 밝혀,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 개혁의 새 기틀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위해서도 해묵은 연예계의 핵심 비리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이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맞먹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 세계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현 주소이다. 우리도 세계시장에 도전할 만한 저력과 능력은 충분하다. 이런 전근대적 행태가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이 글로벌로 가는데 발목을 잡게 할 수는 없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도 연예인 노예계약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도 고질적인 연예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간의 불공정 거래 해소와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투명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예매니지먼트사 등록제와 분쟁조정 제도 등 개선안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모처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문화부가 ‘용두사미’에 그치지 않고 실천 가능한 방안을 내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시 한 번 고 장자연씨의 명복을 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자발적 정화를 기대하며, 관계 당국과 사법부의 책임있는 행동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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