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파일] 증권사 무더기 신설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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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3-2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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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를 늘리면 증권업계 경쟁력도 높아질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5월 국내 증권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며 8개 증권사를 신설할 수 있도록 한꺼번에 인가했다. 그러나 당국이 뜻했던 바와 달리 이달 초 모든 신설사는 작년 4~12월 3개 분기에 걸쳐 누적적자를 내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이는 증시침체로 가뜩이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업계에 찬물을 끼얹으며 증권업종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문제는 당시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업계로부터 반발을 무시한 채 당국이 증권산업 진입장벽을 무리하게 낮춘 데서 비롯됐다.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국은 신설 증권사를 늘림으로써 경쟁 심화에 따른 이합집산을 통해 국내 증권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형화하겠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실 증권사만 늘렸을 뿐 증시침체에 밀려 당국이 바랐던 대형화로 이어질 만한 인수ㆍ합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국이 증권사를 무더기로 인가하자마자 시장은 이를 일제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애널리스트마다 증권산업 공멸을 부를 수도 있다며 증권주에 대한 적정주가와 투자의견을 연달아 하향 조정했다. 실제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10개 증권사는 신설인가 발표가 있었던 작년 5월 초 평균 6% 이상 급락하며 증시에서 2조원 넘는 시총을 증발시켰다. 당국이 시장을 거스른 결과가 투자자 손실로 나타난 것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8% 넘게 급등했던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가 피부로 느꼈던 손실은 더욱 컸다.

증권산업 진입장벽 완화에 대해 증권가는 당국이 의도했던 바와 달리 오히려 증권업계 선진화를 늦출 것이란 입장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시장규모 확대를 기대해 왔다"며 "하지만 시장은 전혀 커지지 않은 상황에서 신설사만 대거 늘리면서 업계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금융투자회사를 키우겠다던 당국도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업계로부터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결과가 수익성 악화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61개 증권사는 회계연도상 1~3분기인 작년 4~12월 누적 당기순이익이 1조4267억원에 그쳐 전년동기 3조5844억원보다 무려 60.2% 감소했다. 특히 8개 신설 증권사인 KTB투자증권(321억원)과 IBK투자증권(104억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91억원), 토러스투자증권(-37억원), LIG투자증권(-36억원), 애플투자증권(-30억원), ING증권중개(-28억원), 바로증권중개(-15억원)가 모두 출범 첫해부터 적자를 냈다. 당국이 시장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증권사를 늘린 탓에 업계 전체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것이다.

시장이 우려했던 공멸 시나리오가 이처럼 가시화되자 금융감독원은 재무상태가 부실해진 8개 신설 증권사에 대해 기획검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실적악화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내부통제를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당국이 무더기로 신설을 허가할 때 밝혔던 경쟁 유도를 통한 증권산업 선진화와 비교가 되는 이유다. 신설사를 무더기로 늘릴 때부터 시장은 과당경쟁을 우려했지만 당국은 뒤늦게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고 있다. 무리한 신설이 증권업계 전반적으로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자 당국은 자본시장법이 허용한 금융투자업간 겸영조차 시기를 늦추고 있다. 이것이 시장을 거스른 결과라는 것을 당국은 지금이라도 시인하고 다음 정책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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