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싸움소를 주로 그려 ‘소만식’으로 불리는 손만식 화백. 그가 소를 주제로 삼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1996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소 그림은 200점을 넘었다. 소싸움이 끝난 뒤 좀 더 가까이서 소를 관찰하려다 소뿔에 받힐 뻔 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겨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자세나, 지고 풀이 죽어 있는 소들의 표정이 마치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소들에게서는 평생의 우직함이 보인다”는 것이 손 화백의 표현이다.
화가 이중섭의 소가 굵고 강한 선을 사용해 강렬한 모습이라면, 손 화백의 소는 세밀한 묘사에 의한 사실주의적 표현에서 나오는 역동적이면서 우직한 싸움소의 모습이다.
손 화백은 “싸움소 그림은 팔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생명력과 투지가 없는 정적인 그림은 흥미를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돈 안 되는 소 그림을 10여 년째 붙잡고 있는 그의 고집도 황소를 닮은 셈이다.
그는 “소가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싸움소가 달리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며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소처럼 꾀부리지 말고 정공법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주류업계의 최대 화두는 오비맥주다.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롯데그룹 인수설에서부터 ‘공장을 차리겠다’, ‘노조가 매각대금을 원하고 있다’ 등.
하지만 현실은 롯데그룹이 오비맥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탐이 나기는 많이 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너무 배짱을 부린다는 것이다. 오히려 롯데가 몸이 후끈 달아올라 자위행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이 오비맥주 노조는 배 밖으로 나온 거만함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발목을 쥐고 있는 상황인 것.
롯데는 최근 오비맥주 인수대금이 2조원을 웃돌면 인수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흘렸다. 말인즉슨 ‘가격이 적당히 맞으면 사고 싶다’는 강력한 희망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비맥주의 최대주주인 AB인베브사는 꿈쩍도 않는다. 최소한 2조5000억원. 경우에 따라서는 3조원을 내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AB인베브사의 입장은 회사가 적자를 내는 것도 아니고 ‘주당 공화국 대한민국’의 맥주 시장을 하이트맥주와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싸게 팔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자 롯데그룹측은 언론에 오비맥주 직원들의 평균 임금이 8000만원이 넘는다는 사실까지 귀띔하는 등 흠집을 내 매물 가격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8000만원은 롯데그룹 임원 이사대우 초임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는 것이 롯데 측의 주장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여의치 않으면 독자적인 맥주회사 신설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협박(?)도 되풀이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이것을 엄포로 보고 있다. 두 회사가 맥주시장을 양분해 빡빡하게 장사를 하고 있는 구도이기 때문에 롯데가 또 하나의 맥주 회사를 만들어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주 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주류 제조면허를 받아내야 하고 브랜드 파워 구축에 걸리는 시간, 맥주 공장을 짓는 시간, 제조 기술 확보 등 만만한 숙제가 아니다.
롯데가 맥주 공장을 설립한다고 하자. 부동산 최고 보유자인 롯데가 부지 걱정에 아무런 근심이 없을 수는 있어도 인력과 기술 확보는 어찌 할 것인가? 오비맥주, 하이트맥주 양대 맥주회사에 대해 롯데측은 시설 스파이, 제조 노하우(Know-how) 기술 스파이, 인력 스카우트 스파이를 양산하고 기존의 회사는 비생산적인 전투에 몰두해야 한다. 시장의 혼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롯데라면 사실 못할 일도 아니다. 특히 MB정부 출범과 함께 롯데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다. 일부에서 나오는 친일본성향 기업의 전성기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물론 지금 롯데의 기세라면 공장을 차리고도 남는다. 작전이든 사실이든. 롯데가 제시한 카드는 ‘신규 맥주회사 설립’이다.
맥주사업에 자신 있다면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이제껏 써왔던 야릇한 방법대신 정공법을 택할 일이다. 타짜 세계에서 하수들이나 즐기는 얕은 수를 쓰지 말고 진정한 타짜가 승리하는 정공법으로 이겨보란 말이다.
‘거대 주류음료 공룡’을 꿈꾸고 있는 롯데의 야망이 과거 어설픈 낭설을 흘려 거만함을 이용해 쥐어짜듯 이겨왔던 얄팍한 수를 버리고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심각하다. '짠돌이'로 통하는 신격호 회장과 아들 신동빈 부회장, 그 밑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청지기’ 이인원 사장(정책본부 부본부장)이 이런 배팅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결론 나기도 어려워 보이니 이를 어쩔까?
이상준 산업부 부국장 bm2112@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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