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로 시작된 노래가 어버이 은혜를 거쳐 스승의 감사까지 이어지고 있다. 벽에 걸린 달력을 유심히 들여다 보니 '5월엔 무슨 기념일이 이렇게 많은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1일 근로자의 날로 시작해 2일 석가탄신일, 5일 어린이날과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가정의 날, 18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여기에 입양의 날, 민주화 운동 기념일,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 등 모두 합치면 한 달의 절반인 14일(겹치는 날 포함)이 기념일이다.
어느 한 날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이 가운데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은 가장에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날이다. 어버이날은 자식 노릇을, 스승의 날은 제자된 도리를 그리고 부부의 날은 이제 갓 남편 자격을 얻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이 됐다.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면 일 년 열두 달 단 하루도 빠짐없이 모셔야 하겠지만, 세상 일이 그리 녹록지 않다.
며칠 전 스터디 모임을 다녀온 아내가 한 말에 밤잠을 뒤척였다.
화장실에서 봤다는 글은 이렇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중략)… 공부도, 일도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부모님 에게도…’. 가슴 한 켠이 울컥한다. 눈시울도 뜨거워짐을 느낀다.
어린 시절 내게 주신 부모의 사랑이 하나 둘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 이라 했던가.
연세 지긋한 어르신의 속마음은 어린 아이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당신께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매년 계획만 세우고 실천을 못 하는 것이 다반사다.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리고 용돈 몇 푼 건네는 것으로 그럭저럭 자식 노릇을 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요즘 매스컴을 온통 장식하는 박연차 리스트로 곤욕을 치르는 전직대통령. 이 역시 자식사랑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40만 달러가 2007년 9월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에게 송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는 모양이다.
영조임금이 자신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가 세상을 뜬지 26년만인 1744년 7월 어머니의 비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아 이제야 25년 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이 비문을 나 스스로 짓는 것은 자식으로서 사친(私親, 후궁 신분인 임금의 친어머니)의 마음을 삼가 받든다는 뜻이다.
붓을 잡고 글을 쓰려 하니 눈물·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
살아오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떠 올려 보자.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존경하는 스승, 흉허물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 까닭 없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이웃, 내 잘못을 크게 야단치지 않고 눈감아준 상사.
5월은 달력을 빼곡히 메운 각종 기념일이 있어 행복하다. 그나마 자식 노릇을 할 수 있어서. 더 늦기 전에…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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