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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의 돋보기 세상) 인재(人才))와 더벅머리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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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6-0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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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선거지(選擧志)편은 사람을 고르는 방법에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몸(身)이니 풍성하고 커야 하며, 둘째는 말씨(言)이니 말이 반듯하고 논리가 분명해야 한다. 셋째는 글씨(書)니 필법이 옛법을 따르되, 아름다워야 하고, 넷째는 판단력(判)이니 이치를 따지는 것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교 전범을 따랐던 고려조이래 조선조 1천년간 우리 선조들은 인재등용에 이 기준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인재라도 동류(同類)로 취급되진 않았다. 이중 으뜸인재로 재주(才)와 덕(德)을 갖춘 이를 성인(聖人)이라 쳤고, 재주와 덕이 없으면 우인(愚人)이라 이르며 덕이 재주보다 나으면 군자(君子)라 했다. 재주가 덕보다 나으면 이를 소인(小人)이라 불렀다.

조선조 태종 4년(1404년)때 일이다. 당시 사간원은 ‘인재등용방법의 개선’ 상소문에서  “무릇 사람을 취하는 방법에 소인을 얻는 것보다 우인이 낫다”며 그 이유로 “소인이 재주를 끼고 나쁜 짓을 할까 심히 두려운 까닭”이라고 적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나라안팎이 시끄럽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정치적 살인이라는 시민들의 원망이 가득하다. 정권은 둘째치고 전정권때 임명된 고위관료들이 이 정치적 살인의 공범이라는 지탄마저 나온다.이들이 자신들의 입신(立身)을 위해 과도한 충성경쟁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혹평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사는 딱히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사간원은 이 상소문에서 당시 세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지금 부유한 자제가 더벅머리 어린아이 때부터 이미 현달(顯達, 세상에 이름을 드날림)하게 제수를 받으니, 어찌 민사(民事)의 간난(艱難)을 알겠으며, 치체(治體)의 완급(緩急)을 알겠습니까.…그 나이가 성장하여 책을 읽어 재기(才器)를 이룩하기 기다린 뒤에 재주를 헤아려 직임을 제수하고…”

부잣집 자제가 지위를 재물로 사고, 공신의 자제라 하여 어릴 때부터 고위관직에 앉히는 한심한 세태를 질타한 것이다.

며칠 전 일부 매체가 정의선 현대차 대표이사 취임 소식을 전했다. 진의여부를 떠나  현대차는 적극 부인하고 나서 이 일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정 씨의 대표이사 취임은 정 씨의 사촌형제들와 동년배 재벌가 자제들보다 늦은 편이라 망설일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현대차는  여론의 눈치보기 바쁜 듯 했다. 글로벌기업의 최고 CEO 선택이 시장판의 잡일꾼을 쓰는 것과  같지 않아 신중을 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정의선 대표이사 취임을 늦추는 이유라면 이유겠다.

재계엔 경영수업이 한창인 재벌가 2~3세들이 경영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기업의 미래를 짊어질 그들이 재물로 지위를 사는 '더벅머리 어린아이'인지, 아니면 현달과 재기를 갖춘 준비된 '인재'인지 선조들의 고언(苦言)을 한번쯤 곱씹어볼 일이다. 

박용수 기자 pe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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