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후퇴로 잠잠하던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시장에서 연초부터 잇달아 '빅딜'이 성사됐다.
빅딜을 주도한 건 다국적 제약기업들로 지난 1월 미국 제약 공룡 화이자는 경쟁사인 와이어스를 680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글락소가 스미스클라인을 76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업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거래로 꼽힌다.
이어 3월에는 독일 제약사 머크가 미국의 셰링플로를 410억 달러에 인수했고 스위스 제약업체 로슈는 미국 바이오기업 제넨텍을 470억 달러에 넘겨 받았다.
연이어 나온 세 건의 거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수 규모와 강자간의 결합이라는 면에서 제약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일련의 대형 M&A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의약업계 M&A 전문가들은 목표가 효율적으로 정해지고 두 기업의 결합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M&A가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합병으로 인해 내부시스템이 복잡해져 장기적 이익실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M&A가 기업이 성장하는 데 '독'이 아닌 '약'이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M&A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직을 재빨리 재정비하는 일이다. '점령군'인 인수기업 구성원들은 의기양양할 수 있지만 피인수 기업에 소속된 이들은 주눅이 들어 사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틴 맥케이 화이자 글로벌 연구개발(R&D) 부문 대표는 "지난 1월 와이어스를 인수한 후 세 달만에 와이어스의 핵심 부문을 포함하는 새로운 조직을 꾸렸다"며 "과감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제약기업 노바티스의 다니엘 바셀라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역시 "두 기업의 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조직을 공격적으로 신속히 재정비하지 않으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조직의 활동 에너지는 금새 소진된다"고 말했다.
신속한 판단과 끊임 없는 의사소통 역시 중요하다. 특히 인수 대상으로 지목된 기업의 조직원들은 합병 이후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서는 목표를 공유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의사소통 과정이 필수적이다.
일례로 로슈는 지난 3월 제넨텍을 인수한 뒤 4주만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개편안에는 미국시장에서 제넨텍의 브랜드를 그대로 두되 아트 레빈슨 제넨텍 CEO는 스위스 본사 임원으로 이동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제넨텍의 새 CEO 자리에는 파스칼 소리오트 로슈 제약부문 이사를 앉히기로 한 결정도 담겼다.
이 개편안은 제넨텍 직원과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특히 항암제 개발 성공의 주역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제넨텍을 이끌어온 레빈슨 CEO의 퇴진 소식은 더욱 그랬다.
빌 번스 로슈 CEO는 "피인수 기업의 구성원과 투자자들은 합병 이후의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로젠텍 구성원들이 받았을 충격을 감안해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을 동원, 의견 조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합병 후 새롭게 탄생한 조직에는 급진적인 개혁과 변화도 필요하다. 합병 이후 조직 내부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덩치만 커진 것에 불과해 생산성과 효율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의약업계에서는 R&D 부문의 개혁이 더욱 절실하다.
야마다 다치 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R&D 부문 대표가 행한 과감한 조직 개혁이 좋은 사례다. 그는 지난 2005년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연구팀 조직 개편을 통해 선도적인 의약제품을 잇달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치는 글락소와 스미스클라인의 R&D 부문을 통합해 우수의약품개발센터(CEDD)라는 이름의 소규모 사업 단위로 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직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 생산성을 높였다. 그 덕분에 GSK는 지난해 매출 기준 글로벌 제약업계 2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물론 M&A에 있어 힘의 불균형은 필연적이다. 제프 킨들러 화이자 CEO 역시 와이어스와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통합 기업의 상호는 '화이자'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단 합병이 성사됐다면 상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합병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투자자들에게도 장기적 관점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큰 그림을 보여 줘야 한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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