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여기저기서 치료를 받아왔고, 최근에는 물리 치료를 2개월 정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아파서 일상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치료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것을 문진해 보고 나서 환자분이 해야 할 몇 가지를 일러드렸다. 그랬는데 빤히 쳐다보시면서 ‘왜 내가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신은 단지 아파서 온 것이니 아프지 않게 치료만 해달란다. 가뜩이나 몸이 불편해서 힘든데 귀찮은 것 시키지 말고 의사가 잘 치료해서 빨리 낫게 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이었다.
어려운 환자를 만났다는 느낌이 스쳤다. 진료실 첫 만남에서 치료율이 결정되어지는 여지가 많은데 말이다.
일반적인 만남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진료실에서의 만남은 의사가 환자 분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해가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서든지, 환자 분이 의사의 판단을 신뢰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세를 갖는는 등 서로간의 동조가 생성되어야 한다.
누군가 나 대신 밥을 먹어 줄 수 없고, 공부를 대신 해 줄 수 없듯이 치료 또한 환자 스스로의 변화 없이 약물이나 치료 요법만으로는 해결 될 수 없는 것이기에 반드시 의사와 환자사이에 서로 동조되어지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그 환자 분에게 그간 치료 경과를 물어 보았더니 이전 치료 받은 곳에서 걸으면 좋다가 해서 억지로 걷다보니 통증이 더 심해 졌다고 짜증을 냈다. 사실 치료를 하다 보면 웬만한 질환에 걷는 행위만큼 좋은 치료법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오죽하면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하지만 이 환자는 깊은 이해와 동조됨이 없는 상태에서 걷는 행위를 한 것 같았다.
환자분과의 대화를 통해 이해를 구하고는, 집안에서 무릎을 잘 보호하면서 무릎과 손으로 일정 시간 기자고 했다.
연세가 높고 체중이 많이 나가면서 허리가 불편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일정한 형태의
자세를 가르쳐주고는 일정 기간 실내를 기게 만들면 의외로 많은 도움을 준다.
4주간이 지난 후 이 환자는 하루 꼭 한 시간 정도는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고 체중도 3kg 정도 빠져서 새로운 목표를 가졌다고 좋아했다.
치료를 할수록 의문이 드는 것은 의사가 과연 사람의 병을 완전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을까 하는 것이다.
환자의 질환이 나아지게 도와 줄 수는 있어도 고쳐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바뀌어 고친다’는 의미의 주체자는 환자 당사자이지 남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진료실 공간은 두 주인공의 만남의 공간이다. 이해되고 동조되어 동화되는 공간이다.
병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동화되게 하는 공간인 것이다. /정한의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