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의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수도권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한쪽 지방정부에서 일방적으로 통합을 선언하고 나서자 다른 지방정부들에서 곧바로 반대운동을 돌입하거나 통합 논의를 무시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양주시와 구리시는 주민들의 이해와 사전조율 없이 지자체의 '밥그릇 싸움'으로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진행돼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지역민들이 통합 찬·반에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되면 자칫 씻을 수 없는 앙금만 남기고 행정체계는 그대로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석우 남양주시장은 지난7일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남양주-구리 지역에 대한 자율통합 의사를 전달하고, 행안부의 사전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남양주시는 구체적인 추진계획은 물론, 통합 상대측인 구리시와의 사전 조율도 없었던 상태였다.
이 시장의 요청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리시는 크게 반발했다.
박영순 구리시장은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어느 지자체 한쪽이 자율통합을 반대할 경우에는 행정구역 개편이 무리하게 추진되서는 안된다"며 통합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다.
박 시장은 "구리시의 주된 생활권은 남양주가 아닌 서울"이라며 "굳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해야 한다면 동일한 생활권으로 가야 한다"며 아차산을 중심으로 구리시와 광진구, 중랑구가 통합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구리시의 통합 반대 입장에는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남양주와 구리가 통합될 경우 2115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비롯해 정부가 기존의 교부세액 수준을 5년간 보장하고, 시·군·구 당 50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급격한 도시화, 고령화에 따라 행정구역 개편이 불가피한 측면을 고려하면 정부가 광역 및 지역발전 특별회계를 활용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 통합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기숙형 고교, 마이스터고, 자율형 사립고 등을 통합 도시에 우선적으로 지정하는 점도 장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편 논의를 확산시키면 해당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해 민주적인 절차를 밟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재원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지금의 통합 방식은 지방자치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라며 "중앙정부는 통합에 대한 큰 판을 다시 짜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시민들도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렸는지 의문"이라며 "시민들이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민교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신중한 검증없이 기득권 논리에 따라 통합을 추진하는 것을 옳지 않다"며 "다만 몇년 씩 논란이 돼왔던 문제가 사회적 어젠다가 되고 논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서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나연 기자 n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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