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는 헌법이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국민이 존중해야 할 최고의 규범이지만, 북한에서는 헌법에 대해 우리나라와 같은 법치주의 국가와 매우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에 대해 “노동계급의 당과 국가의 노선과 정책을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체법”이며, “국가사회생활에서 지침으로 되는 당의 정책적 요구들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법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헌법이 당의 위상과 역할을 제한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당의 정책적 요구가 오히려 헌법의 내용을 결정짓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헌법보다 당의 영도를 우위에 놓고 있으므로, 북한의 문헌들은 김일성이 생시에 “당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반혁명적 주장’을 물리치고 “인민정권기관과 사회안전기관, 사법, 검찰기관에 대한 당의 영도를 철저히 실현하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 이번 개정헌법에서 “국방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100조)”라고 규정했다고 해서 국방위원장직이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최고 직책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번 개정헌법에서도 여전히 ‘당의 영도적 역할’, 즉 국가기구에 대한 당의 영도를 정당화하는 구절(제1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는 ‘당의 지도하에 있는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를 의미한다.
북한 언론은 지난 4월 헌법 개정 이후에도 변함없이 김정일의 직책과 관련해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상황에 따라 세 직책 중 하나만 언급하거나,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일 동지”라는 표현과 같이 두 직책만을 언급하기도 한다.
‘총비서’는 당의 최고직책이며,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국가기구의 최고 직책이고, ‘최고사령관’은 군대의 최고직책이다.
이 세 가지 직책 모두 김정일의 통치에 필수적이지만, 당의 최고직책인 ‘총비서’직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는 “노동계급의 수령은 무엇보다도 당의 수령으로 되며 당의 영도는 다름 아닌 수령의 영도로 된다”라는 주체사상의 논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당·국가인 북한에서는 당의 총비서와 수령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왜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강화했는가 하는 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헌법 개정은 김정일이 앞으로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3남 김정은(또는 김정운)에게 맡기고, 자신은 과거 김일성처럼 국가기구, 특히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치하면서 외교와 국방을 주로 맡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판단된다.
1974년에 후계자로 결정된 후 김정일이 당의 ‘조직비서’로서 당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김일성은 주석직을 가지고 주로 국가기구, 특히 중앙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치하는 역할분담구도가 자리 잡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1월 8일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사실상 ‘김정일-김정은 공동정권’이 출범했다.
그 결과 최근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의 파워가 100이면 지금 김정운의 파워는 한 20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김정은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돼 있는 상황이다.
/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