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매석(買占賣惜).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물건을 사들였다가 다시 파는 것을 뜻한다.
매점매석의 대표적인 예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찾을 수 있다. 한량이었던 허생은 아내의 성화에 갑부 변씨에게 돈 만 냥을 빌려 과일을 모조리 사들여 비싼 값에 팔아 돈을 벌었다.
허생은 다음에는 말총을 싹쓸이해서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도둑들을 섬에 살게 해준다. 나중에 이들이 거두고 난 여분의 양식을 일본에 팔아 수익을 챙겼다.
허생은 변씨에게 빌린 돈의 10배를 갚는다. 이후 변씨가 이완이라는 정승을 허생에게 소개한다.
이정승은 시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오히려 허생에게 비웃음만 사고 돌아간다. 허생의 비범한 인품을 알게 된 이정승은 그를 기용하고자 다시 찾아갔지만 이미 허생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 허생전의 내용이다.
허생전은 부국이민(富國利民)의 사상을 담아 실학사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이같은 매점매석이 생명을 담보로 금융계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국민들이 다시 한번 월가의 모럴헤저드에 치를 떨고 있다. 금융사기나 실적과 관련된 얘기가 아니다.
신종플루로 전세계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월가에서 신종플루 백신인 타미플루 사재기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가 200명분, 씨티그룹이 1200명분, 모건스탠리가 1000명분의 백신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들의 백신 확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뉴욕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사내 의료센터를 갖춘 기업 또는 법인은 고위험 직원들에 대한 백신 주사의 경우 정부에 백신 지급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월가 금융기관들의 백신 확보 시기가 좋지 않았다. 현재 미국 정부가 확보한 백신 총량은 3600만병분에 불과하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우선 접종대상자가 1억6000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고위험군에 대해서만 1억명분 이상의 백신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 시민과 언론들이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규모의 보너스 파티를 여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아이들과 임산부, 노인들이 백신을 맞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백신 사재기에 나선 것은 분명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백신 관련 모럴헤저드는 더욱 심각하다. 당국에 따르면 타미플루 공급자인 한국로슈는 13개 기업의 직원 명의로 허위 처방전을 받는 수법을 동원해 2만7000여 캡슐을 불법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국계 금융기관인 HSBC는 조류인플루엔자(AI) 파문 이후 세계 각국이 타미플루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던 2007년부터 타미플루를 사재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계은행들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인식으로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외국계은행이 서민금융확대에 등을 돌리는 등 '제배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이 사라지기도 전에 백신 사재기 논란까지 커지면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금융 산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가 없는 금융은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백신 사재기로 인해 금융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다시 한번 무너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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