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내년 1월 중 시행을 목표로 '펀드 판매사 이동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불만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증권사의 펀드 판매 비중을 높여주기 위해 불완전한 제도를 밀어붙이면서 은행권과 증권업계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펀드 판매사 이동제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올 4분기 시행을 위해 준비해왔다.
펀드 판매사 이동제는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을 통해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가 중간에 아무런 제약 없이 판매사를 갈아탈 수 있는 제도다.
제도가 시행되면 펀드 판매사 간의 투자자 유치전이 벌어져 판매수수료 인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은행들은 금감원이 금융기관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제도 도입을 강행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내년부터 해외펀드 비과세 혜택이 사라지는 등 펀드 관련 이슈가 많아 펀드 이동제는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있다"며 "그러나 금감원이 이달 중으로 펀드 이동제 도입을 위한 전산 변경 작업을 마무리하라고 독촉해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국민은행 등은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과 같은 내부적인 이유로 금감원이 제시한 전산 변경 시한을 지킬 수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B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지난 6월 일방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연내 시행한다고 했지만 미비한 점이 많아 미뤄진 것"이라며 "자본시장법에 펀드 이동제 도입 근거를 삽입하는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판매사들의 참여가 지연되더라도 내년 1월 중에는 일단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며 "자본시장법 개정 작업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펀드 이동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영업망에서 열세에 놓인 증권사를 지원하려는 것"이라며 "그러나 당국이 시장의 경쟁 질서를 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제도가 시행되면 판매수수료 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은행 고객은 펀드, 대출, 예금 등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면서 금리 혜택을 보기 때문에 펀드 판매사만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은행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이 판매하는 펀드가 조금씩 달라 막상 판매사를 바꾸려 해도 선택권이 제한될 것"이라며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펀드 상품별 특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펀드 이동제 시행을 계기로 은행에 쏠려 있는 펀드 판매시장 구도를 흔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펀드 이동제는 증권사에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며 "증권사별로 펀드 판매 비중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과 증권사 간의 첨예한 갈등이 우려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일단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삼철 금감원 자산운용총괄팀장은 "펀드 이동제는 고객이 원할 때 판매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돕는 제도로 수수료 인하 등은 부수적인 효과"라며 "1월 중 시행해보고 판매사 간의 과당 경쟁 등 제도 취지에 어긋하는 행태가 나타나면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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