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아시아 기업들이 글로벌 인수합병(M&A)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분기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아시아 기업들의 '빅딜'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기업들이 1분기에 발표한 M&A 규모는 141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6% 급증했다. 국내 거래가 대부분인 일본을 포함하면 증가폭이 79%로 줄지만 거래 규모는 1660억달러로 늘어난다. 이는 같은 기간 유럽 기업들이 발표한 M&A 규모(1620억달러)를 웃도는 것이다. 1분기 미국 기업들은 2200억달러 어치의 M&A를 성사시켰지만 거래 규모는 1년 전보다 11% 감소했다.
아시아 기업들이 M&A에 팔을 걷어부칠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 여건이 낫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지역 국가들은 선진국보다 두드러진 경기회복세를 과시하고 있다. 사트캇 차우두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는 "아시아 기업들의 M&A가 활발해진 것은 경제여건이 촉매로 작용한 결과"라며 "세계화 과정에서 성장 기회를 찾는 것이 새로운 진화 단계"라고 말했다.
아시아 기업들이 처음부터 M&A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본이 부족한 것은 물론 조달능력도 달렸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 인도 등지에서 두드러졌던 정부의 규제는 해외 기업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는 데도 방해가 됐다.
상황이 바뀐 것은 빅딜의 '약발'을 확인한 뒤다. 인도 철강기업 미탈스틸이 대표적이다. 미탈은 1989년 트리니다드토바고 국영 제철회사인 이스콧을 시작으로 2006년 프랑스의 아르셀로까지 인수하며 세계 최대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로 거듭났다. 중국 가전업체 레노버도 2005년 IBM의 PC 사업부문을 빨아들이며 이름값을 크게 불렸다.
2000년 글로벌 M&A시장에서 아시아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7년 아시아지역 최대치인 7280억달러 규모의 M&A를 성사시킨 데 이어 지난해엔 비중이 26%(6250억달러)로 급증했다. 파란 파루키 씨티그룹 아태지역 글로벌뱅킹 대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아시아 기업들의 M&A가 조만간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와튼스쿨이 내는 온라인 경영저널 날러지앳와튼(http://knowledge.wharton.upenn.edu)은 최근 아시아 기업들이 기업 성장 전략의 하나로 M&A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그 배경에 주목했다.
이런 전략 변화는 무엇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 통화에 힘입은 바 크다는 지적이다. 로렌스 레비니악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는 통화가 강세를 띠고 은행들의 대출 여력이 늘어나면서 아시아 기업들이 경쟁사보다 더 성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M&A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미국 달러화 가치는 인도 루피화에 대해 7.6% 하락했고 한국 원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에 대해서는 각각 5.6%, 6.6% 떨어졌다.
레비니악 교수는 "해외 M&A가 실패하는 것은 대개 막대한 프리미엄 때문인데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프리미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M&A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린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하비르 싱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는 "과거 아시아 기업들은 M&A를 '위험한 것'으로 치부했지만 최근에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성장 전략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산업의 경우 기업들이 충분히 성장했기 때문에 추가 성장을 위해서는 M&A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덧붙였다. 싱 교수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이동통신업계와 특수화학, 제약업계를 꼽았다.
레비니악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재벌에 대한 거부 반응이 덜한 풍토 역시 아시아 기업들이 M&A시장에서 선전하게 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사업다각화에 나서는 기업을 평가절하하지만 아시아에서는 M&A를 통해 사업 영역을 늘리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며 "인도의 타타그룹이나 한국의 LG그룹은 안방시장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차우두리 교수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의 급격한 환경 변화도 아시아 기업들을 M&A시장으로 불러모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선진국 기업들의 가치와 저항력이 떨어진 것이 아시아 기업들의 구미를 돋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시아 기업들의 경우 덜 공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외 피인수 기업을 통해 노하우를 배우려는 경향이 두드러져 빅딜을 성공으로 이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raskol@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