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지현 기자) 리비아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가 본격적인 대응을 착수하고 있는 가운데, 비행금지구역(no-fly zone) 설정이 군사적 개입의 방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특정 지역 상공의 항공기 비행을 막는 군사적 조치다.
이 조치로 카다피 정권이 전투기,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국 등의 압도적인 항공 전력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명피해도 예방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관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다.
특정국에 대한 외부 군사개입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거쳐야만 합법성을 갖는다는 것이 주된 국제 여론이다.
미국이 과거 아랍권에서 유엔 안보리 차원의 동의 없이 이라크 침공 등 군사 행동에 나섰다가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는 등 대(對)리비아 군사 개입에서도 유엔 안보리 결의는 필요하다.
비행금지구역은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설정된 바 있다.
당시 유엔 안보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결의하고 나토가 공군력을 동원해 세르비아 군용기를 격추했다.
현재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힘을 싣고 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8일(현지시각)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해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관련 "하나의 옵션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포함한 모든 수단이 검토대상"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이날 하원에 출석해 "리비아 상공에 우방과 군사적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국방장관에게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도 이날 RTL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관측통들이 리비아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아이디어를 제기했다고 들었다"며 "이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옵션이다"고 밝혔다.
피용 총리는 "다만 프랑스는 보스니아 사례처럼 유엔 결의가 있을 때만 나토 회원국들과 함께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의 동의 여부다.
양국은 한 국가 사안에 대한 국제적 개입에 대체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제네바에서 리비아 사태에 대해 회의 후 "누구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혀 서방국 장관들과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러시아가 카디피 정권의 무기 수입의 최대 수혜국인 것으로 알려지며 대(對)리비아 군사 개입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왔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리비아에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 규모의 무기수출 계약을 한 데 이어 18억달러 규모의 추가 무기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다만 중국 등이 지난 26일 유엔 안보리에서 무기수출 금지 조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등 리비아 제재 결의안에 대해 기존 반대에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주목할 만한 조짐이다.
이날 리비아 제재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러시아와 중국이 카다피 정권의 만행을 좌시할 수 없다는 큰 원칙에 일단 동의한 이상 향후 비행금지구역 논의 시에도 기권 등을 통해 적극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로써 리비아 내 유혈사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군사 개입 여론이 강화되며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유엔 안보리 등에서 논의 대상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