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소액주주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던 당시 일부 기업들은 이들 소액주주들의 문제제기에 마라톤 주총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내 기업들의 주총은 대부분 30분 안팎에서 마무리 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덜한 금요일을 택했다. 그룹내 주요 계열사들이 주총을 같은 시기에 여는 것도 일반적인 모습이다.
일부 장시간 주총이 이뤄진 부분도 오너 일가의 경영권 다툼 등 특별한 경우다. 경영 전반에 대한 검토와 논의, 지난해 경영에 대한 평가와 축하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기자가 취재한 한 대기업의 주총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식의 의결 진행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미 입을 맞춘 주주가 해당 의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내고 박수로 이를 의결하는 가운데 진행을 맡은 대표이사가 미리 약속한 주주의 발언 순서를 혼돈하면서 발언권을 얻은 주주가 발언을 다른 주주에게 넘기는 사건이 일어난 것.
두번째 의안에 대한 발언을 약속한 이 주주는 의장이 첫 의안에 대해 발언권을 얻자 당황하며 첫 발언을 사전에 약속한 주주에게 미뤘다. 그리고 다시 두번째 의안에 대해서는 발언권을 얻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등 사전에 계획된 찬성발언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밖에 일부 기업들은 수년 동안 같은 주주에게 매번 발언권을 부여하면서 주주들의 의결이 요식행위로 끝나게 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워렌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전야제를 포함해 축제분위기에서 2박3일 동안 진행된다. 주주들과 경영진들이 이 기간동안 경영현안을 세부적으로 논의한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총이 정답은 아니다. 다만 기업 위주의 수박 겉핡기 식 주총은 코스피 2000 시대를 훌쩍 넘어선 한국 경제가 여전히 성숙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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