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야당과의 토론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강행처리를 시도했고, 홍 의원이 이를 막아낸 것이다. 항상 보여졌던 여야간 몸싸움을 시작 전에 막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산안 처리 때마다 국회 기물이 파손되고 반복되는 몸싸움 속에 일방적으로 상정되는 일이 반복되자, 여야의 뜻있는 국회의원들은 다수당의 일방 처리와 소수당의 물리력 행사라는 악습을 이제는 그만하자며 '국회선진화법안'을 냈다.
하지만 이 뜻깊은 법안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여야 간 입장 차이로 충분한 토론조차 못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 의원의 '결단'은 남달랐다. 지난해 12월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으며,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2012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던 약속에 충실하기 위해 비준안 기권 의사를 밝혔고, 결국 정족수 미달로 전체회의로 넘어가지 않았다.
여야 의원 52명으로 구성된 '국회 자정(自淨)모임'은 지지부진하던 모임의 실질적 영향력을 보인 홍 의원의 기념비적인 사건에 신이 났다. 이 결과 '부결사태'로 논란이 됐던 한·EU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해 4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자고 촉구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표결을 통해 정상적으로 의사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물리력인지 정당한 의사진행을 힘으로 막는 게 물리력인지 홍정욱 의원은 다시 곰곰 생각해야 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몸으로 표결을 방해했던 것을 생각했다면 홍 의원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표결한 것을 그리 쉽게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물론 한·EU FTA의 발효일이 7월 1일임을 감안하면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도 준비기간이 촉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당은 2년 전 한·미 FTA도 당장 통과되지 않으면 국가가 망할 것같이 선동했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국민은 국회를 늘 바라보고 기대한다. 매일 깨부수고 싸우는 정치인들에게 질려 정치불감증에 걸린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이제는 정치인들이 제발 국회를 믿어달라고 매달릴 때도 됐다.
'빠르게 하는 것보다 바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실천한 홍 의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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