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의 페리스코프] 연기금 주주권 행사…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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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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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청와대가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경제5단체장과 오찬 회동을 갖는다.

지난달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의 대기업 주주권 행사를 주장한 것과 관련해 청와대의 입장을 설명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측은 곽 위원장의 주장이 청와대의 입장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분명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는 친시장·친기업이다. 우리 정부가 경제와 관련해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공감을 얻으려면 내가 직접 경제계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다"며 경제5단체장과의 만남을 주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의 설명이 이론의 여지없이 명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기업들의 최대 주주 중 하나인 이상 '주주권 행사 불가'라고 청와대가 나서서 못 박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말로써' 열어버린 상자를 다시 닫을 수는 없다. 한 번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방법은 '동서고금'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말의 주체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의 수장이고,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나아가 미래기획위원회라는 곳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획하는, 그래서 자문 하나하나가 장기적인 정책방향이라는 무게감을 갖는다. 이를 파문이 확대된다고 해서 "그게 아니었고…"라고 뒤집을 수는 없다.

하여 청와대에서도 전향적인 방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다만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게 합리적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기금 운용과 관련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20명 위원 중 정부위원과 국책연구소장 등 정부 관계자가 8명이나 된다.

아울러 정부가 단 한 주의 의결권도 갖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도 낙하산 인사 논란이 반복된다고 보면 정부의 입김에서 국민연금이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정유사들이 수천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기름값을 인하하는 나라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면서 연기금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감추지 않았다.

신현한 교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같은 이는 "국민연금이 대기업들의 대주주가 되고,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게 된다면 정부는 합법적으로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통해 대기업의 CEO를 친정부 인사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연금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324조원이다. 이 중 국내 주식투자 금액이 55조원이고,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상장기업의 수가 139개다.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당한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반발하지 않는다.

청와대가 경제단체장들에게 국민연금 운용의 독립성 확보 의지를 어느 정도나 강조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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