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객들이 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초가집 올레길을 지나가고 있다. |
(제주=아주경제 강정태 기자)제주에서도 유독 바람이 거칠고 땅이 척박하기로 유명해 ‘못살포’라 불리던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지난 14일 이곳에서 추사 김정희의 8년 3개월 유배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는 ‘추사유배길’이 열렸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 연구개발센터(센터장 양진건 교수)가 이날 제주 추사관에서 개최한 ‘추사유배길’ 열림 행사엔 탐방객들이 가득 몰렸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쬈지만 탐방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삼삼오오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추사유배길 3개 코스중 하나를 고르느라 분주했다. 추사 유배길은 ‘집념의 길(8.6km)’, 인연의 길(8km), 사색의 길(10.1km) 등 3개 코스로 나뉜다.
이중 기자가 선택한 길은 2코스 인연의 길. 말 그대로 추사와 인연이 담긴 길이다. ‘수월의 못’과 제주의 옹기문화를 맛볼 수 있는 ‘제주옹기박물관’을 거쳐 울창한 산림을 느낄 수 있는 곶자왈, 오설록 녹차밭까지 이어지는 3시간 코스 길이다.
마늘밭 키 작은 돌담길을 따라 1km 쯤 지나자 연꽃과 새들의 쉼터인 ‘수월이 못’과 만나게 됐다. 민심을 흉흉하게 했던 수월이라는 빼어난 미모의 기생이 죽자 마을사람들이 그 집터를 깊게 파서 생긴 못이라고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유배생활의 적적함과 외로움을 달랬던 추사의 시도 돌에 새겨져 탐방객들을 반긴다.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감귤꽃 향기 가득한 감귤밭길을 지나 다다른 곳은 옹기마을로 유명한 대정읍 구억리였다.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제주옹기박물관이 들어선 마을이다. 제주의 거친 흙으로 만든 탓에 투박하지만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제주의 옛 모습을 옹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쉬지 않고 이어진 강행군에 숨이 턱턱 막힐 무렵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더위를 한 번에 식혀주는 시원한 냉풍을 뿜어내는 제주의 곶자왈이다.
추사 김정희도 “밀림이 그늘 속에서 하늘빛이 실낱만큼 보였다”며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나무들과 사랑스러운 단풍의 모습을 보았다”고 극찬했던 곳이다.
곶자왈은 제주의 용암지대에 만들어진 숲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자연 온냉방기 역할을 한다. 식물종 다양성 면에서도 식물의 보고로 꼽힌다.
도착지인 오설록에선 장대하게 펼쳐진 녹차밭 길을 걸으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유도 만끽하게 한다.
추사 유배길을 안내하던 제주대 양진권 교수는 “김정희는 정치적인 생명이 끝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주에서 반전의 드라마를 보여줬다”며 “옛 글씨를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추사체를 완성한 곳, 절제미의 걸작인 ‘세한도’도 그린 곳도 제주 유배지에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풍광 위주의 길에서 벗어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길을 만들고 싶었다”며 “조선시대 대표 유배지였던 제주에서 광해군, 최익현, 이승훈 등과 관련된 유배길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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