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있는 공직자는 집권층이 자신과 철학적 배경이 다르다면 한직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소신있는 공직자로 통한다. 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한 이후 그는 MB정부에서 재정부 차관(2008년)→주 필리핀 대사(2008~2010년)→경제수석(2010년)→지경부 장관(2011년)까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정통 현직 관료중에서 최 장관 만큼 MB노믹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공직자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그이지만 과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픔을 겪었음을 알수 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전환점이 된 IMF 외환위기 회오리 한복판에서 정책당국자로 자리했던 사람이다.
1997년 국민의 정부 출범 직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협력과장이던 그는 당시 임창렬 전 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IMF 전 총재가 맺은 관리체제 서명식에 얼굴을 비춰야 했다. 우리사회에 아직까지도 씻겨지지 않고 있는 상처로 남아 있는 이날 그가 느꼈을 자괴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도 이 즈음 붙여졌다.
최 장관은 참여정부 기간이던 2005년부터 이명박 정부 출범직전이던 2008년초까지 오랜 시간 현직과 거리가 멀었다.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WB) 상임이사라는 한직을 전전하면서 두문불출하게 된다. 지근거리에 위치한 IMF와의 악연이 있는 그에게는 당시의 경험이 국제기구의 역할과 정책연구에 몰입하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치솟자 이른바 '고환율정책' 논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최 장관은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원화의 지나친 평가절상은 반대'라는 입장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최 장관 말대로 수출은 잘되고 있지만, 물가가 4%를 웃돌고 있어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이다.
그는 여전히 뉴스메이커다. 최근에는 정유업계의 영업이익 등 기업의 팔을 비틀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 자처해 온 최 장관의 잇따른 '기업때리기'는 시장의 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과는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연초 인사청문회에서 우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중소기업의 성장'을 꼽았다. MB노믹스가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이 잘사는 나라'를 꿈꾸고 있다면 최 장관이 펼쳐야 할 정책과 행보는 중요하다. 이게 곧 공직자의 소신이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닌 진정성에서 우러났던 것임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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