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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24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오후 조건 없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6.10 국민 촛불대회'에 참가한 한 대학생이 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승관 기자 seungkwan@ |
#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K부장의 둘째 딸은 지난 3월 서울의 모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회사에서 등록금이 전액 지원됐다. 이미 모 여자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첫째 딸도 회사에서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주고 있다. 이 회사는 일정액의 사교육비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K부장은 요즘 딸들의 해외 유학을 알아보고 있다. 회사에서 유학비용까지 지원하기 때문이다.
# 중소기업에 다니는 N과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2명의 아이가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큰 아이가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서울 사립대학 등록금이 학기당 500만원에 육박하니 N과장은 두달치 월급을 모두 털어야 한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렇다고 회사에 학비를 지원해 달라고 할 처지도 아니다. N과장이 다니는 회사는 한 때 잘 나가는 중소업체로 통했지만, 지금은 경기하향업종으로 분류돼 임금이 오히려 깎이지 않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버텨가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은 재벌 총수와 서민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일반 직장인도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기회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이 같은 차이는 자녀교육으로 이어져 대물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가장 치명적 것은 월급과 성과급의 차이가 자녀 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연봉정보사이트 '페이오픈'에 공개된 현대차와 기아차, 1차 협력사인 한라공조의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8000만원(2010년 기준)을 상회한다. 반면 매출 1000억원대, 직원 200~300명 규모의 2∼3차 협력사 중 적잖은 기업의 평균 연봉은 한라공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3000만원대에 불과하다.
협력업체인 I사의 직원 평균연봉은 2600만원에 불과하다. 복리후생 항목 중에 자녀학비 지원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학자금 대출도 회사에서 꺼려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교육 현장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기업은 자녀 유학비까지 지원
삼성SDS를 비롯해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임직원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삼성SDS는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 1명에게 연간 240만원을 지급한다. 국내 대학등록금은 전액, 해외유학 자녀에 대해서는 1년에 1000만원 한도로 지원하고 있다. LG CNS 역시 근속자 1인당 모든 자녀에 대해 학자금을 실비로 보조하고 있다.
통신업체들의 자녀 교육비 지원은 더 과감하다. SK텔레콤은 모든 임직원에게 전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100% 지원해 준다. KT에선 임직원 자녀의 중고등학교 학비는 전액, 대학 등록금도 70%까지 지원하고 있다. LG유플러스도 정규직, 계약직 상관없이 유치원은 월 10만원,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는 실비 지원을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은 중고등학생부터 대학 등록금까지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직원 자녀 수에 제한 없이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다"며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국내는 물론 유학 중인 자녀에게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비를 회사에서 지원한다. 임직원의 자녀학자금, 형제자매 장학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형제자매가 부양가족으로 등재된 경우), 성적우수장학금(전학기말 성적이 학급석차 50%이내) 등이 주어진다. 신세계 측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자녀의 입학금과 등록금을 연간 1000만원내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업계 최초로 '퇴직 임직원 자녀'의 중·고·대학교 학자금을 퇴직 후 10년까지 지원한다.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년간의 기퇴직자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며 15년 이상 근무한 임원과 20년 이상 근무한 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장기근속 임직원 총 68명에게 혜택이 주어진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500여명의 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학자금으로 545억원을 지급했다. 3년 이상 근속자 자녀들에게 16학기 한도 내에서 대학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중·고교생의 경우에도 전 자녀들에게 100%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자녀 뒷바라지에 허리가 휠 정도다. 회사에서 지원되는 학자금이라고 해봤자 겨우 '학자금 대출'이 전부다. 지원이 아니라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근무하는 한 가장은 "당장 월급을 걱정하는 상황이다"며 "학자금 지원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지만 현재 월급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양질의 교육은 포기했다"고 밝혔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교육도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 경기악화로 지원 대부분 중단
건설사들의 학자금 지원은 대형 건설사와 중견 건설사간의 차이가 확연하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등은 직원 자녀의 유치원 생활부터 대학교 학자금까지 전액 지원하고 있다.
해외로 유학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건설은 직원 자녀가 유치원에 다니면 분기당 60만원, 중고등학생은 연간 300만원을 지원한다. 국내 대학교 학자금은 전액, 해외 대학은 연간 1000만원을 지원한다.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는 모두 비슷한 수준의 자녀 학비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중견 건설사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대학교는 물론 중고등학생 학비도 지원하는 곳이 드물다. 특히, 최근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짙어졌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고 건설사 중에서 직원 자녀 학자금을 지원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며 "특히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기존에 일부 지원해주던 회사도 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교육으로 부의 대물림 더욱 심화
지금까지 부(富)의 대물림을 상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도 이 때문에 생겼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육으로 인해 부의 대물림이 더 심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부모의 소득에 따른 교육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과 대학 진학 성과를 좌우한다"며 "이것이 자녀 세대의 소득 격차로 이어져 부의 대물림이 교육을 통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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