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초안은 경찰의 수사 범위를 정보수집과 탐문으로 한정했다.
경찰 수뇌부는 겉으로는 국무총리실 등 관계기관이 경찰과 검찰의 이견을 조율해 최종안을 낼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검찰이 경찰 고유 권한 중 하나인 내사의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기존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속셈을 드러냈다며 격분하는 분위기다.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법무부와 검찰이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시행령 초안은 6월 말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 형사소송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이 초안을 마련하기에 앞서 경찰과 상의를 거친 적도 없는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내년 1월1일 발효되는 개정 형사소송법은 ‘사법경찰관이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명기하고 있지만 이귀남 전 법무장관은 국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내사는 수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수차례 답변한 바 있다.
검찰과 법무부가 총리실에 제출한 시행령 초안은 종전에 내사 범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돼 경찰이 자율적으로 수행해온 계좌추적, 압수수색 등을 수사 개시 단계로 분류해 검찰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이는 경찰이 관행적으로 수행해온 내사 중의 일부를 법령 조문화 과정에서 수사로 인식함으로써 검찰의 지휘 범위를 되레 넓힌 셈이다.
다른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개정 형소법이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검찰의 상급기관인 법무부의 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한 것은 검찰과 경찰이 동등한 지위의 국가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라는 의미인데 검찰이 이를 뒤집고 있다”며 “이번에 제정되는 대통령령에서 이런 문제를 더 엄밀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의 한 중간 간부는 “검찰이 경찰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상 경찰의 영역인 내사의 범위를 줄이고 수사의 영역을 늘리는 전략을 쓸 것이라는 경찰 내부 예상대로 움직인 것”이라면서 “국무총리실 등 관계기관이 조율에 나선 만큼 경찰도 나름의 논리를 펴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외부 행사 참석차 경찰청을 떠나는 길에 굳은 표정으로 “말을 하려면 할 말이 많지만 지금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서로에게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서 “기관 간 이견 조율 과정에서 결국 옳은 방향으로 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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