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지난 1년간을 되새기며 반성하는 계절이지만, 기업체 임직원들을 비롯한 전문경영인들은 머리가 쭈뼛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사철이기 때문이다.
일부 그룹들은 임직원들의 인사를 미리 발표해 연말 부담을 덜었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여전히 인사 폭을 놓고 고심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CEO들은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 정도가 심하다. 실제로 12월이면 남 모르게 병원을 찾는 전문경영인들도 많다.
얼마 전 국내 최대 규모 병원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기자에게 "삼성그룹의 최고위 경영자들도 12월만 되면 병원을 찾는다"며 "주로 찾는 약이 수면제"라고 말했다. 이들이 처방받는 수면제는 일반약국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강도가 2∼3배에 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전문경영인들은 한해 동안의 경영실적과 주가관리, 조직관리 같은 객관적 평가보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오너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오너 경영자가 회사 외부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그를 만나서 어떤 조언을 듣는지에 온갖 촉각을 곤두세운다. 혹시나 자신의 이름이 외부에서 거론되는지도 취재한다.
눈치 빠른 전문경영인들은 일찌감치 작업(?)을 해놓는 경우도 있다. 오너경영자의 지인을 통해 자신의 치적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역으로 흘리기도 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작업에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철퇴를 맞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오너경영자와 전문경영인의 괴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한쪽은 주인이고, 다른 한쪽은 직원이기 때문에 지향점과 추구하는 삶이 다르다. 때문에 오너는 직원에게, 직원은 오너에게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전문경영인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국내 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스스로가 여전히 '오너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게 우리나라의 현재 실정이다.
소신과 책임감 있는 진정한 전문경영인의 탄생을 속는 셈 치고 다시 한 번 기대해도 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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