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3일 증시개방 이후 외국인의 유가증권시장 주식 보유잔액은 20년 만에 83배로 늘었다. 국내 기관투자자 보유잔액은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에 따라 코스피는 외국인의 매매패턴에 따라 급등락하고 있다. 특히 대외위기가 발생하면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자금 유출입에 제한이 없는 한국 증시가 외국인들에게 편리한 ‘현금인출기(ATM)’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 공헌한 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1992년 73조원이었던 코스피 시가총액은 작년 말 1천42조원으로 14.3배로 불어났는데, 외국인들이 기여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파악하는 선진투자기법을 확산시켰다.
무엇보다 증시개방으로 외국인들에게 동일한 투자정보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회계투명성이 강조됐다. 국제회계기준(IFRS)과 같은 표준이 도입되면서 국내 금융 산업이 선진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 외인 증시비중 33%…국내 기관 압도 한국은 1992년 주식시장을 개방할 때 외국인 지분 한도를 10%, 12%, 15% 등으로 점차 높여가는 계단식 개방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이듬해인 1998년 지분 한도를 일제히 없앴다. 문을 완전히 열은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은 헐값에 한국 주식을 사들이면서 큰 시세차익을 거뒀다. 많은 배당금까지 챙겼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외국인이 지난 20년간 한국증시에서 얻은 수익률은 351%에 달한다. 1993년∼2004년말까지 지속적으로 매수우위를 유지한 외국인의 순매수 67조7천억원을 투자원금으로 보고 투자수익률을 계산했다.
대신증권은 외국인이 20년간 한국증시에서 챙긴 이익은 33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두 증권사는 외국인이 이 기간 한국 증시에서 40조원 안팎의 배당금을 챙겼을 것으로 계산했다.
이 방식의 계산으로는 외국인들이 개방이후 한국에서 챙긴 수익이 350조∼360조원에 달한다.
외국인이 한국증시에서 집중적으로 사들인 분야는 금융업종이다.
한국거래소가 전산통계를 보유한 지난 2000년 이후의 매매동향을 보면 외국인은 금융업종에서 114조1천120억원 어치 사들였다. 은행, 보험주를 주로 샀다.
금융업종은 외국인 지분 상승으로 인해 배당률이 높아졌다.
작년 말 금융지주별 외국인 지분율은 KB금융 57.06%, 신한지주 59.81%, 하나금융
지주 59.73% 등이었다. 이들 세 금융지주사의 지난해 배당금 7천111억원 중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가져갔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FnGuide)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6~2010회계연도) 금융권의 배당성향은 25.9%로 전체 평균인 20.3%를 웃돌았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은행산업은 공공성이 중요하다. 외국인 투자자는 단기적 시각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지분이 너무 높으면 은행의 공적인 성격과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은 “외환위기 이후 증시가 전면 개방되면서 외국인은 헐값에 주식을 사들여 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연간 배당금만으로도 원금을 회수했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작년 말 현재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중 외국인 보유잔액은 341조9천430억원으로 증시 개방 첫해인 1992년 4조1천250억원에 비해 83배나 늘었다. 보유비중은 32.9%다. 외국인의 보유비중은 1992년 4.9%에서 꾸준히 늘어 2004년 41.9%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 때 28.7%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30%대로 올라섰다.
이에 반해 국내 기관투자자 보유비중은 2006년 20.8%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08년 금융위기 때 11.69%로 바닥을 찍고 회복 중이지만, 외국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 외인·대외 변수에 요동치는 증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주가도 외국인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주가는 급락했다.
특히 한국 증시는 작년에 개방의 쓴맛을 톡톡히 봤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지자 주가가 폭락했다. 국내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작년 8월 초 코스피 폭락 당시 종가 기준으로 8월1일 2,172.31이었던 코스피는 불과 6거래일만에 17%나 낮은 1,801.35로 추락했다. 이 기간에 외국인은 3조2천517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기관과 개인이 각각 2조5천386억원, 6천854억원 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외국인을 이겨내지 못했다.
3년전인 2008년 9월 금융위기 당시에도 사정은 같았다.
코스피가 1,501.63에서 946.45로 무려 37%나 하락한 9월25∼10월27일에 외국인은 4조7천67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기관은 1조784억원, 개인은 3조6천276억원 어치를 각각 순매수했지만 지수 급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국인은 또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활용해 증시와 연계된 파생상품시장에서 초단타매매로 돈을 벌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국내 파생상품 시장 초단타매매 거래자 중 외국인이 75%를 넘는다.
교보증권 송상훈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증시는 외국인이 지배하고 있어 대외 변수에 휘둘린다. 국내 경제 펀더멘털과는 상관없이 외국인 움직임 때문에 증시가 불안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외국인 ‘대항마’ 키워야 한국증시가 개방으로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세계화된 만큼 외국인들에 대한 섣부른 규제책을 시행하기 보다 이들과 맞설 수 있는 대항마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증권 오 센터장은 “현대차·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돈 벌어오는데, 외국인이 배당금으로 가져간다”며 “대항마를 키우는 게 대안이다. 국민연금이나 펀드시장을 키워서 자생적으로 국내 투자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투협 김동연 증권서비스본부장은 “외국인이 있기 때문에 코스피가 2,000선을 넘긴 측면이 있다. 현재 외국인 지분율이 30% 안팎인데, 양날의 칼”라면서 “단기보다 장기자금이 들어올 수 있게 MSCI 등 선진국지수 편입을 더 추진하고 외환수급에 따라 외국인이 나가면 기금이 저가 매수에 나서는 연계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조윤남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증시가 개방돼 글로벌 투자대상이 된 덕분에 글로벌 기업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긍정적인 측면 뿐 아니라 외국인이 국내 증시를 일종의 현금인출기 이른바 ATM기로 여기는 현상도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조 센터장은 “외국인에게 증시를 개방하면 그들에게도 동일한 투자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점점 강조돼 IFRS와 같은 국제 회계 표준이 도입됐다. 국내 금융산업이 선진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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