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성우 기자)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된지 20주년인 올해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나 된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2009년 2월 글로벌 투자은행(IB) 탄생의 꿈을 안고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3년여가 돼 가지만 해외 시장 개척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글로벌 IB로 도약할 수 있는 증권사의 대형화는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국내 시장은 외국계 거대 IB들에게 잠식당하면서 이른바 '외국인들의 놀이터', '현금인출기(ATM)'가 돼 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의 경우 해외 IB부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 비중이 30~40%로 높은 수준인데 반해,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법인은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 19개 증권사의 93개 해외점포의 2011년 회계연도 상반기(2011년 4월~9월) 당기순손실은 모두 4110만달러에 이른다. 2010년 상반기에 1580만달러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과 비교할 때 160.6%나 늘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국내 금융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고, 국내 상품만으로는 투자 수익률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은 일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해외시장 진출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단순히 규모의 투자보단 유형별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증권사의 해외 현지법인 출자는 아시아 지역 비중이 77.6%나 된다. 그간 증권사들의 해외진출의 주요 타깃이 아시아 같은 신흥시장에 집중된 것이다. 이 가운데 홍콩의 비중이 63.9%로 가장 높다. 홍콩의 경우 거대시장인 중국을 공략하는 거점지역인데다 그 자체로 발달된 세계 금융 중심지로서 글로벌 역량을 키우는 데 적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좀 더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중남미 같은 신흥시장(이머징시장)으로의 확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 산업의 레드오션화가 국내에 비해 덜 진행됐으며, 아직 글로벌 대형 IB들의 진출이 많지 않다는 점이 이들 신흥시장의 매력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동남아시아, 중남미 같은 이머징 시장에서는 아직 개인투자자들의 증권 거래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기존 증권사들의 규모도 영세한 곳이 많아 상대적으로 금융시스템이 선진화돼 있는 국내 증권사들의 시장공략이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우선‘스몰딜`에서 부터 경험을 쌓아 점차 큰 규모의 `메가딜`로 옮겨 가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로 나간 증권사들이 초기부터 현지 대기업의 대규모 딜(deal)을 따기는 힘들다”며 “글로벌 증권사들이 놓치고 있는 중소규모 딜부터 수행하면서 트랙 레코드(업무실적)를 쌓아 대형 딜로 옮겨가는 탄력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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