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의 한탄은 선거의 해를 맞아 공직사회의 혼돈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확인케 했다.
정치권이 깊은 성찰없이 한꺼번에 선거공약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어 이를 검증하고 대응하는 데에도 업무시간이 빠듯한 상황이다.
최근 인사이동으로 정책부서 고위관료가 된 한 공직자는 19일“중앙부처 정책부서를 운영하게 됐지만, 큰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의견들을 검토하는데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관련기사 3면>
실제로 최근 여야 정치권이 쏟아놓은 공약들은 복지와 대기업개혁 등을 총망라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간판을 바꾸고 새출발한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내세운 ‘맞춤형 복지’ 구호에 맞춰 영유아와 아동, 청소년과 노인층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별 복지정책의 풀버전을 마련했다.
민주통합당도 생애주기별 무상의료와 아침 무상급식, 고교무상교육 등 무상시리즈를 포함한 복지공약을 준비했다. 사병들의 월급을 파격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은 여야가 입을 모으고 있는 공약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공약들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민주통합당은 국회를 겨우 통과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해 사회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으며, 지역갈등을 겨우 잠재웠던 동남권 신공항 문제도 정치권이 다시 끄집어 냈고, 여야 구분없이 쏟아낸 대기업 규제와 조세정책은 재계와 경제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은 심각한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통상 정권 마지막해에는 정부 주도의 새로운 정책입안이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가장 심각하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올해 세제개편 작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해마다 굵직한 세법개정안을 내놓지만, 올해는 20년만에 총선과 대선이 겹친 그야말로 선거의 해여서 정부입법안이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치권 공약에 적극 대응하라고 한 터에 여야 정당에서 내 놓은 세제개혁안을 방어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미 부자증세와 대기업 증세론등 수십종의 세제개편안이 정치권발로 쏟아지고 있다.
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올해는 수비만 하다 끝날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내놓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큰 세제개편 보다는 곁가지들을 정리하는 수준의 법안만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올해는 법안을 발의해 봐야 국회에서 막혀 폐기될 것이 뻔하다”며 “18대 국회에서는 더이상 법안처리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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