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잔도풍경구를 나선 취재팀은 제갈량의 무덤으로 알려진 무후묘(武侯墓)를 찾았다.
“제갈씨의 기원을 놓고 학자마다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왕이 하사해 개성(改姓)했다는 설이 가장 힘을 얻고 있죠.” 무후묘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제갈씨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안내원에 따르면 제갈량의 조상은 본래 ‘갈(葛)’씨로 랑야주(琅<王+耶>諸)성에서 생활했으나 훗날 왕의 뜻에 따라 양두(陽都)성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당시 양두성에는 이미 갈씨 성을 가진 씨족이 살고 있었는데 뒤늦게 들어온 갈씨와 구분짓기 위해 제갈량 선조의 갈씨를 제갈씨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제갈량은 ‘랑야제갈공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갈량은 가랑야양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날 산둥(山東) 이난(沂南)현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지만 지금 이 곳에는 제갈씨의 후손이 남아있지 않다.
이에 관해 일부 학자들은 “옛날 양두성에는 대규모 주민 이동이 있었다”며 집단 생활을 하는 씨족사회에서 제갈씨 전체가 이 일대를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동한 말년에서 위진남북조시대에 대대적인 이주가 있었으며 당시 북방의 유목민족이 고(古)한양(漢陽)성으로 처들어오면서 제갈씨족은 전란을 피하기 위해 양두성을 떠났다는 설명이다.
비록 현재 이난현에는 제갈씨 및 제갈량의 후손이 남아있지 않지만 제갈씨의 발원지로 여겨지고 있으며 제갈량을 숭배하는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이 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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