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륭 사장 |
(아주경제 김진오 기자)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밥그릇 싸움(?)’이 볼 만하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무역금융 분야의 업무 중복을 놓고 시작된 신경전이 양 기관의 미묘한 주도권 싸움 양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 기관의 이 같은 경쟁이 수장인 김용환 행장과 조계륭 사장 간 대리전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두 수장은 성격과 업무 스타일 측면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행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스킨십 경영에 나선 반면, 조 사장은 요란하지는 않지만 정중동 행보로 소신경영을 펼치고 있다. 업계는 두 기관장의 관계를 라이벌 구도로 읽어가며 행보에 깊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비즈니스 외교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의 금융 계약을 놓고 무역보험공사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9년 말 한국전력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UAE 원전 수주에 기여했던 무역보험공사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바라만 보는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김용환 행장 |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2월 수출입은행은 "UAE 원전 금융 계약이 상반기 중 마무리된다"며 대주단이 10년 분할 대출, 18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100억 달러를 빌려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UAE 원전의 금융 지원을 함께 고민해왔던 무역보험공사가 수출입은행 측이 사실상 단독 지원으로 노선을 정리하면서 완전 배제된 셈이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2년 넘게 공들여온 UAE 프로젝트에서 언제부턴가 수출입은행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금융서비스를 단독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컨소시엄과 얘기된 것으로 안다"며 "결국은 기관끼리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수 있어 자제하고 있지만, 엄연히 상도의를 저버린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UAE 프로젝트는 우리가 아닌 발주처가 모든 것을 쥐고 진행하는 것"이라며 "아직까지 공식 채널을 통해 무역보험공사가 배제됐다는 어떠한 통보도 들은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앙금은 이번뿐만이 아니라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들어와서 수출입은행이 기존의 대출업무에서 벗어나 해외 보증업무까지 본격적으로 손을 대면서 무역보험공사 고유의 업무영역을 침범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1968년도에 수출보험법이 제정되면서 해외 보증은 무역보험공사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 국제통화기금(IMF)사태와 산업의 고도화가 맞물리면서 금융산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해외 사업의 대출 및 보증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런 시기에 수출입은행은 법안을 무시하고 당장 돈이 되는 해외 플랜트의 보증지원 서비스를 암암리에 수주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러다가 2006년 감사원의 지적을 받자 소관 부처인 기획재정부를 등에 업고 법 개정을 요구하게 된다.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7년 기재부가 보증 업무의 일부를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수출입은행도 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결국 해외 보증 업무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로 거머지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출 금융으로 신규 수익을 창출하는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견원지간이 돼버린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이 취임하면서 중첩 업무에 대한 언급과 함께 양 기관 통합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서로 관계가 불길에 휘발유를 끼얹은 격이 돼버렸다.
일단 수출입은행은 현 정부와 코드를 같이하며 UAE 원전에 사활을 걸겠다는 각오며 무역보험공사는 최근 또 하나의 큰손으로 부상한 중국계 ‘차이나머니’와 이슬람 및 일본계 자금 유입에 명운을 같이 하겠다는 복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두 기관의 배후에 있는 재정부와 지경부의 파워게임 여부에 따라 양측의 주도권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투자은행(IB) 등 민간의 영역을 국책은행이 더 챙기는 꼴이 생기는 것처럼 금융산업의 재편과 함께 업황에 따른 교통정리가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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