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명철 기자=#1. 직장인 이모씨(46)는 지난 2010년 은행에서 3억원의 대출을 받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전용 107.7㎡짜리 중대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하지만 이자를 내지 못해 결국 지난달 경매 처분됐다.
#2. 서울 동작동에 있는 전용 84㎡짜리 S아파트(감정가 5억70000만원). 예전 같으면 4억~5억원에 팔렸을 법한 물건이지만 현재 최저 입찰가가 2억3000만원선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8월 2회 유찰 후 3억6400만원에 낙찰됐지만 낙찰자가 대금을 미납해서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유찰돼 이달 21일 다섯번째 경매가 진행된다.
계속되는 경기불황과 부동산시장 장기 침체에 주택 경매시장이 원치 않는 '호황'을 맞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채무자들의 아파트가 속속 경매 매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경매투자 붐이 일어날 법도 하지만 경매시장 분위기는 신통치 않다. 경매물건은 늘고 있지만 낙찰되는 아파트는 갈수록 줄고 있다. 집값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으니 싼 값에 사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경매의 매력은 크게 반감된 상태다.
◆넘쳐 나는 경매 물건…낙찰률·낙찰가율은 '뚝'
12일 대법원 경매정보에 따르면 올해 1~5월 경매시장에 나온 서울·수도권 아파트는 1만1322가구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같은 기간(8550가구)보다 2770여가구가 더 많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은 "요즘 경매로 나오는 아파트의 경우 집주인이 시세가 고점이던 5~6년 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구입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원금 및 대출이자 압박에 급매물로 내놓아도 팔리지 않자 급기야 경매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아파트를 지켰던 중산층이 지속된 경기불황과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에 '하우스푸어(대출이자에 시달리는 집주인을 가리키는 신조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은행 등 금융권이 경매가 진행 중인 아파트에 대해 청구해놓은 금액은 지난 3월과 4월 각각 2025억원(681건), 1972억원(629건)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있는 감정가 9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 경매물건도 지난해 5월 87건에서 지난달 134건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새 주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서울·수도권 아파트의 경매 낙찰률(경매 물건수 대비 낙찰건수의 비율)은 42.06%,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82.80%를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 5월에는 낙찰률 38.19%, 낙찰가율 76.84%로 각각 4%, 6%포인트 정도 떨어졌다.
◆가계부채 '위험' 경고음
집값 하락과 금융부담을 이기지 못한 하우스푸어 소유의 주택이 대거 경매시장으로 몰리면서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접근하고 있다는 경고음도 적지 않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것은 이자를 갚기 위해 가계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서울·수도권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앞으로 금융기관의 담보인정가액 축소와 주택담보대출 상환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이 가중되면 경매시장에 아파트 물량이 쏟아지고, 이 경우 깡통아파트(낙찰가액이 청구금액보다 낮은 아파트)가 은행 건정성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에선 부동산경기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지만 오히려 경매시장에 진입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설춘환 알앤아이컨설팅 대표는 "경매물건은 넘쳐나는데 경매 참여자는 적어 싼 값에 알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좋은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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