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무제(완벽한 연인들). 똑같은 시계, 똑같이 시계를 맞췄는데, 시간이 갈수록 초침이 달라지고 있다. 같이 시작했지만 둘중 하나는 먼저 죽을수 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불쌍(不雙)'한 남자다. 자신보다 5년 먼저 죽은 남자때문이었다. 그리움 외로움속에 애틋함만 커졌다. 시계, 거울 등 그의 작품은 모두 '더블(Double)'이다. '쌍쌍 바'처럼 똑같은 두개가 나란히 전시된다. '더블'은 그의 분신이자 유령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도 16년전 에이즈로 세상을 떴다. 쿠바출신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1996)다.
생전 늘 주변인이자 소수자였던 그는 3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할때까지 10년 작품활동기간 소재나 형식면에서 극도로 단출한 작품을 남겼다.
“최선을 다해 산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복수다.”
그는 사후에 별이 됐다. 작가는 죽었지만 지금까지 총 60회의 개인전과, 700회가 넘는 그룹전을 참여했고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엔 미국관 대표로, 2011년 엔 그의 작품을 주제로 이스탄불 비엔날레가 개최되는등 현대미술에 영감을 주는 신화적 아이콘이 됐다.
그의 아시아 첫 회고전이 21일부터 삼성미술관 플라토 등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뉴욕의 모마를 비롯한 세게 유수의 미술관 및 개인 소장가 22개처에서 대여한 작가의 대표작 44점이 소개된다. 특히 플라토와 함께 리움, 삼성생명 서초타워, 서울 시내 여섯 곳에 설치된 외부 빌보드(옥외 광고판)를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신문 기사 단신을 오려붙이 포스터 더미. 이 작품, 한장씩 가져가도 된다./ 사진=박현주기자 |
◆사탕 포스터 더미, '쌍 시계'의 전복
'주류를 공략하라'. 곤잘레스-토레스는 보수파가 집권하던 1980-90년대 미국에서 쿠바 출신의 난민이자 유색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라는 사회적 소수자로 살면서도 변방의 이미지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류 미술계의 시스템을 활용해 그 허점을 내파하고 전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그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진정한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예술작품을 관람객이 변형 소유하게 하는 등 혁명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공공미술가는 물론, 선배 개념미술가들과도 차별화되는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작가는 빌보드, 시계 거울 사탕 전구 퍼즐 인쇄물더미 텍스트등 주변의 모둔 것에 영감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모든 작품의 제목은 '무제'. 극도의 미니멀한 작품을 그대로 본땄고, 예술의 진지한 형식을 파괴시킨다. 물론 그의 작업에 '최고의 공범'은 관객이다.
반듯한 '인쇄물 더미'지만 그냥 보기만 하는 '쌓여진 더미'가 아니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가 아니라 '작품을 가져가시오'다.
플라토에 전시된 켜켜이 쌓인 포스터(인쇄물 더미)는 한장씩, 아니면 두장, 세장씩 가져가도 된다.
바닥에 깔린 은색봉지에 담긴 사탕. 전시를 보다가 주워먹어도, 주머니에 넣고 가져와도 된다. 네모 반듯했던 사탕무더기작품이 시간이 지날수록 쥐가 파먹은 듯한 들쭉날쑥하게 흐트러지면서 원본을 파괴돼야 완성되는 작품이다. |
또, 바닥에 잔디처럼 깔린 사탕 더미도, 집어서 그자리에서 까먹어도 되고, 주머니에 넣고 와도 된다.
사각의, 반듯한 작품들은 관객들의 '집적거림'을 원한다. 그것이 작품의 일부다. 그래야만 곤살레스가 의도하는 작품으로 최종 완성되는 것이다.그는 '변화만이 진정한 영속'이라 믿었다.
◆시한부 인생 죽음의 공포..영원히 죽지 않는 작품 탄생
동성 애인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 자신도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흐르는 시간과 소진되는 재료로 죽음의 공포를 담았다. 그러면서 ‘재료는 영원히 다시 채워지는’ 작품의 조건으로 재생과 영속을 기원했다. 모든 작품속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이 재생반복하고 있다.
그는 생전 " 이 작품은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나의 두려움에서 시작됐고, 그 두려움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나의 작품은 없어질리가 없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파괴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이 관객의 주머니에, 아니면 가방에 들어가 전시장 밖으로 가져가도록 허용함으로써 영원히 생존할 수 있게 한 것. 작품은 원본도 복제품도 아닌, 영원히 죽지 않는 분신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플라토 안소연 부관장은 "이 전시를 본후 '사탕과 포스터'를 보게되면, 아…, 내가 그 전시가서 포스터를 가지고 왔지, 아, 그때 가져온 사탕이 있어"라며 곤살레스를 떠올리고 작품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 기간 댄서가 출연, 음악을 들으면서 5분정도 춤을 추는 댄서타임이 진행된다. 물론 작품의 일부다. |
이번 전시의 주제인 ‘더블(Double)’은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한 쌍의 오브제인 동시에 완벽한 사랑과 사회적 터부인 동성애, 작품의 감상과 훼손, 변형과 영속, 복제와 탄생 등을 담은 이중적 의미를 상징한다. 20년전에 나온 작품으로, 그의 예술철학이 새삼 놀랍다.
전시와 연계해 권미원 UCLA 교수, 정헌이 한성대 교수, 정연심 홍익대 교수, 임준근 미술평론가의 강연회가 이달 30일, 7월 14일, 8월 18일, 9월 8일 네 차례 열린다. 7월 26일 오후 7시에는 ‘한여름 밤의 아프로-쿠반 재즈 콘서트’가 마련된다. 매일 오후 2시, 3시, 4시 5시 전시설명회가 열린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관람료 3000원. 1577-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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