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세균, 정치적 역정과 고난… 해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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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6-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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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아무리 성격 좋고 주변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살다보면 싸움이나 갈등관계에 얽매이기 마련이다.
 
 조정능력이 탁월하다는 정세균 상임고문도 온갖 주장이 교차하는 국정의 장에서 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겪어왔다. 정 고문은 여태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어떻게 이겨나갔을까.
 
 정 고문은 크게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지난 참여정부 시절 가장 큰 난관에 부딪혔다.
 
 정치에 입문한지 2년 만에 외환위기에 이어 1997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 그리고 정권교체. 이 과정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브레인을 맡고 있던 정 고문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기업의 구조 개선과 노동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에 합의를 도출을 시도했다. 정 고문은 당시 길거리로 내앉은 노동자을 일일이 설득하고 사측의 일방적인 태도를 경계하며 해고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엔 정균환 의원이 이끄는 '중도개혁포럼'의 회원이었음에도, 지지도가 급락한 노무현 후보를 지키기 위해 원칙을 지켰고 중개포와의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10월 26일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패하며 정 원내대표가 당의장 권한대행을 겸하게 됐을 때도 당의장직에서 물러나고 산자부 장관에 취임, ‘질 좋은 성장’과 ‘상생경제’를 추구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2007년 1월엔 열린우리당과 구민주당의 갈등이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장관을 뒤로하고 당에 복귀해 범여권 통합의 첨병으로 뛰기도 했다.

 18대 국회에서는 거대 여당의 압박 속에서도 2009년 4월 29일과 10월 28일 두 차례의 재보선에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견인하며 정국주도권을 끌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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