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서 약 2000만원에 판매되는 유명 사진가의 대형 작품을 800여만원에 구입했다. 첫 나들이 치고는 꽤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당사자는 첫 거사에 크게 만족하지는 못한 듯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역 생존 작가의 2000만원 넘는 작품을 어떻게 40% 가격에 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일 것이다.
행운의 가격에 구입한 이 작품은 본경매에 앞서 진행된 '기업 소장품 경매'의 위탁작품 중 하나였다. 위탁한 기업은 예금보험공사였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기업의 금융담보물이 거래되는 것이라, 일반 시중가보다 크게 낮았던 것이다. 누구에게는 불행이나 위기가 또다른 이에겐 행운이나 기회로 작용하는 것이 세상사다.
최근 이와 관련된 사건이 실제 일어났다. 지난달 하나캐피탈이 서울옥션을 상대로 6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하나캐피탈이 미래저축은행과 계약을 맺고 145억원을 투자하면서 김찬경 회장의 소장 미술품 5점을 담보로 받았는데, 이 미술품의 가치평가를 의뢰받은 서울옥션이 지나치게 고평가해 큰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당시 평가 총액이 155억~192억원이었지만, 실제 매각을 진행해보니 90억원에도 못 미쳐 원금을 보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미술품의 가치는 시점과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시장논리까지 덧붙여지면 상황이 더욱 급변할 수도 있다. 똑같은 명품이라도 백화점의 정식 매장에 있을 때와 변두리 상설 할인매장에 놓일 때의 동시간대 가격은 큰 차이가 난다. 미술품 가격 역시 매매 의뢰자가 어떤 상황에서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불황에 빠진 요즈음 미술시장에서 미술품 투자가 적기인가?. 최근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대답은 "그럴 확률이 높다"이다. 시장규모가 무한 확장되던 4~5년 전과는 반대상황이지만, 위의 사례처럼 입문과정의 초보 컬렉터에게도 양질의 작품을 좋은 조건으로 구매할 기회는 더 많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주요 9개 옥션사의 35개 경매를 조사한 결과 거래액은 약 372억원이었다. 이 중에 서울옥션이 153억원, K옥션이 144억원으로 나타나 양대 메이저 경매사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불황인 최근에도 소규모 경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신규 잠재 소비계층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경기불황 속 요즘 미술시장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미술애호문화의 확산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술시장이나 미술품 투자에 관한 강의를 의뢰하는 곳은 대개 금융권이나 VIP 마케팅 관련 부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도서관, 주민센터, 병원, 중소회사 등에서도 미술문화 강좌가 인기다. 그림을 이야기하고 보고 감동하면서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고, 갤러리 탐방을 자주하면서 뭔지 몰랐던 작품들을 느낄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50 클럽'에 진입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모 기업의 광고 카피가 답이다. 강팍한 세상, '문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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