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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칼럼> 유류 혼합판매? 소주 섞어 파는 것과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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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8-0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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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유류 혼합판매 제도. 한 주유소에서 여러 정유사의 기름을 섞어 판다고 한다. 정유사의 공급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정유사의 과점 구조를 깨 기름값 인하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소비자에 실질적인 이득이 있을까. 일선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유가 상승과 함께 시행된 알뜰 주유소 운영, 일본산 유류 수입 검토는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혜택 대신 정유사의 부도덕한 이미지만 창출했다.

정유사만 너무 몰아세우는 느낌이다. 기름값을 낮추겠다면 기름값의 과반인 세금을 낮추는 방법이 확실하다. 독과점이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기관이 조사하면 된다. 우리 사회에 독과점은 만연하다. 내수 자동차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현대차그룹을 조사할 것인가.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조사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공정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유류 혼합 판매는 가격 인하나 독과점 논란을 떠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브랜드. 4개 정유사의 각 제품마다 특화한 노하우가 있다. 여기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가 갈린다. 모든 상품, 지자체, 국가와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국격을 논하고 선진 브랜드를 강화하려는 것도 같은 취지다. 유류도 다르지 않다. 국내 정유사의 정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출 품목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일본산 유류의 수입도 황 등 낮은 수준의 환경 기준치로 포기할 정도로 한국산의 경쟁력은 높다.

각 사의 정제 방법도 다르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심지어 기름 옥탄가도 다르다. 지금 정부 정책은 이 색을 지우고 이도 저도 아닌 제품으로 섞어 판매하겠다는 논리다. 그렇게 되면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 표지를 유지할 필요도 없다. 마치 소주 병에는 브랜드가 붙어 있찌만 내용물은 전국 소주를 섞어서 판매한다는 것과 같다. 이 같은 생각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참고로 공학자 입장에서 차량에는 같은 연료를 사용하는 게 중장기적으로 좋다고 권장하고 있다. 사람마다 익숙한 음식이 있듯, 차량도 처음부터 사용해 온 기름이 좋다. 정부는 연구용역 결과 정품 혼합 연료 차량에 이상이 전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상이 없을지에 대해선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기름을 선택하는 건 소비자의 권리다. 이를 통해 기름값이 조금 내려간다 하더라도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최소한 섞어 판 기름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복수 상품 자율판매업소’가 아니라 ‘혼합연료 판매업소’라고 정확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유류 혼합 판매 땐 가짜 유류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가짜 유류의 판별도 어려워질 뿐더러 문제가 생긴 이후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가짜 유류가 아니더라도 차별화가 없어지면서 옥탄가를 법적 하한선에 맞추는 등 전체적인 질적 저하도 나타날 수 있다.

유류 혼합 판매 시행으로 ℓ당 10~20원 낮춘다고 하다고 해도 실질적인 소비자 이득은 얼마나 될 지 의문이다. 급출발 몇 번이면 기름값 인하 비용이 상쇄된다. 중장기적으로는 급출발-급가속-급정지를 개선하는 지속적인 에코드라이브 정책이 수십배 높은 이득이다.

정책은 긴 안목,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잘못된 법규나 규정의 휴유증은 크다. 문제가 됐을 때, 되돌이키기 어려울 때 ‘아니고 말고’식 관행으로 처리할 것인가. 그 땐 이미 시장은 망가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름 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중국 시노펙(중국석유공사)처럼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관리ㆍ판매하는 게 나을 것이다.

(글=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정리= 김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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