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 위동페리가 첫 한중간 카페리를 운항한 이후 20여년간 누적된 수송객 인원은 357만명, 물류는 160만TEU를 기록했다.사진은 초기에 운항된 골든브릿지호의 모습. |
웨이하이 아주경제 김효인 기자 = 반세기 가까이 단절됐던 한국과 중국의 교역관계는 한중수교 약 2년전인 1990년 9월 15일, 한중 합작 위동항운 소속의 골든브릿지(GB)호가 인천항에서 123명을 태우고 웨이하이(威海)로 향하면서 다시 재개됐다. 골든브릿지호의 운항은 한중간의 수교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으며 양국간 인적 물적 교류가 봇불처럼 터지는 출발점이었다.
한중수교 20년을 맞아 이달 중순 웨이하이를 찾았을때 인천과 웨이하이에 거점을 둔 위동항운의 페리호는 20년 한중수교의 눈부신 발전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위동항운 웨이하이 현지관계자에 따르면 1990년 한 해 동안 중국으로 건너간 승객 수는 9412명, 화물량은 248TEU(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매출 200만 달러에 불과했다.
20여년이 지난 2011년 위동항운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간 승객수는 약 27만 명, 14만 TEU의 화물을 실어나르며 연 매출 1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여년간 위동항운의 한 노선만 여객이 28배, 화물이 600배, 매출은 무려 50배 정도나 증가한 것이다. 이후 인천 기점 중국 노선은 10곳, 평택기점 4곳, 군산기점 1곳 등 총 15곳으로 확장됐다.
지난 13일 웨이하이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도로 양옆으로 줄곧 보이는 것은 삼성프린터 광고들이였다. 웨이하이시 관계자는 한중수교의 20년 성과를 둘러보러 온 취재진을 마중하며 “이곳에는 삼성프린터 뿐만 아니라 조선업과 관련해 삼성중공업등 많은 한국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해있다”며 “올해 5월에 열린 ‘장보고 마라톤 대회’에서도 삼성 기업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웨이하이시 경제개발구에 위치한 롯데마트. 평일 오후임에도 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을 찾고있었다. |
그는 차를 몰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한국인들이 집중 거주하는 몇몇 지역을 소개해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역은 시내 중심가인 경제개발구에 위치한 커다란 롯데마트 건물이였다. 건물 뒤에는 롯데가 지은 러티엔스지에청(樂天世紀城)고층 아파트가 세워져 있었다. 평일 오후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롯데마트를 찾는 중국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여유국 관계자는 “2년 전에 롯데마트와 아파트가 지어진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가 중국 웨이하이에서 운영하고 있는 웨이하이 포인트 골프장 내에 한글로 작성된 도우미 평가 안내문. |
웨이하이의 금호아시아나 골프리조트에서 만난 순레이(孫雷)주임은 “골프장의 직원들은 한국어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에 골프를 치러오는 한국 손님들이 많다”며 “휴일의 경우 하루 평균 200명의 한국 손님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통계에 따르면 20년전 한중수교를 맺기 전까지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공식적으로 7개에 불과했다. 1992년 수교를 맺은 이후 2000년까지는 해마다 100∼800개의 신설법인이 생겨났다. 2001년부터는 해마다 1000∼2300여개의 법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다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야반도주하는 한국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주춤해졌다.
최근에는 중국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 크게 치솟으면서 중국에 공장을 차렸던 다수의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은 소비시장으로써 한국기업들의 중국진출을 유인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중국 어디를 가든지 전자제품에서는 삼성·LG, 자동차에서는 현대·기아 자동차, 식품에서는 오리온 초코파이와 신라면 등의 브랜드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적교류의 증가는 양국 문화교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의 드라마, 아이돌 가수들을 위주로 이루어진 한류(韓流) 열풍은 지난 20년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3월 국내 서비스•제조 분야 300개사를 조사한 결과, “한류 덕에 매출이 늘었다”고 답한 기업이 전체의 51.9%를 차지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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