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원칙에 따라, 국내에서 유통되는 작고 작가 6000만원 이상 미술작품에 대한 양도차익에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동안 시행을 앞두고도 번번이 좌초되고 심지어 폐지됐었을까?
지난 1990년 처음 ‘골동품이나 그림에 대해서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재무부가 나서 7월 16일 ‘미술품양도소득세법’ 과세 확정안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9월20일 문화관광부와 재무부 합의로 2년 유예, 2003년 12월18일 최종 표결(찬성143, 반대29표, 기권8표) 폐기됐다. 그러다가 2008년을 기점으로 다시 재논의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저주라도 걸린 것일까, 공교롭게 미술품양도세법 시행을 앞둔 시점은 우리나라 경기가 최악이었다. 미술시장을 일컬어 ‘가장 늦게 잠들고 가장 일찍 깨는 시장’이라고 한다. 그만큼 경기변화에 민감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변방에 있다는 것이다. 겉으론 OECD Top 10, G20, 2030클럽 진입, 문화강국의 구호를 외쳐대지만, 막상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문화부터 뒷전이다. 토사구팽(兎死拘烹)격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이란 한탄이 힘을 받는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미술품양도소득세 혹은 그에 준하는 과세가 해외에도 있다.대표적으로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이다. 우리로선 큰 영광이다. 어느새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단 말인가. 경제와 문화는 다르다. 경제가 삶의 생존수단이라면, 문화는 질적 수준의 척도이다. 단순히 경제지표로써가 아닌 문화인식의 인프라 측면에서도 과연 우리나라가 해외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수준에 도달 했나 돌아볼 일이다. 진정한 형평성은 두루두루 치우침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정을 들여다보면 더 참담하다. 우리나라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도 아닌 지방에 고작 1곳뿐이며, 연간 작품구입액은 고작 40억원 선이다. 세계인 누구나 알만한 소장품은 단 1점도 없다. 심지어 지하철 노선표나 하차방송에서조차 대공원은 나와도 유일한 국립미술관에 대한 안내도 없다.
미술시장의 꽃이라는 경매사도 마찬가지. 영국의 소더비경매사의 역사는 268년인 반면, 우리나라의 첫 경매사인 서울옥션은 고작 15년을 바라본다. 시장의 건강한 유통을 위한 수요층 역시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수익 있는 곳에 세금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 소득 수준에 따라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 형평성일 것이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따라할 게 따로 있는 법이다.
미술품양도세 자체가 악법이란 얘기가 아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양도세는 순수 미술인의 몫이 아니라, 일반 수요자의 몫이다. 이미 미술가나 화랑은 비록 90% 이상이 각각 연 매출 2천만원과 1억원도 안되지만, 소득세를 충실하게 납부하고 있다.
최근 한국화랑협회를 비롯한 10개 미술단체는 ‘미술품 양도소득세 폐지를 원하는 범문화예술인 모임’을 구성하고 관련 법안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미술 시장이 위축된 데다 세금까지 부과한다면 미술문화 전반의 발전이 저해될 것이라는게 미술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는 징세에 앞서, 안정적인 조세확보를 위한 납세자의 기반을 먼저 다져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