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이나 수증기속에 들어온듯한 이기봉의 풍경은 시각적 세계를 파괴하려는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 그 너머를 보기를 권유한다.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삼성미술관 플라토 안소연 부관장이 기획한 '(불)가능한 풍경'전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난감한 심정'과 공감하면서 통과한다.
오는 8일부터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1층 플라토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 난감한 지점'을 개념화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풍경화의 전형을 확 뒤집는다.
'이발소 그림'정도로 치부되던, 또는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풍을 반복하는게 아니다.
안 부관장은 "통념상의 풍경을 부정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재현을 통해 이 세상을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다"는 것이다.
'풍경화'. "익숙해서 진부한 느낌까지 있다"는 생각은 이 전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플라토에서 선보인 '풍경'전은 '세련되면서도 개념미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번 전시에는 강홍구 공성훈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김동연 김범 김소라 김홍주 문범 오용석 이기봉 이불 이세현 정서영등 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등 총 30여점을 선보인다.
김소라의 풍경. |
로댕의 '지옥의 문'이 있는 전시장에 설치된 '커텐같은' 은색의 비닐들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김소라의 '풍경'으로 이 작품은 소리까지 집중해야 한다. 멧돼지 까치를 포획하는데서 발생하는 소리를 채집해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스피커에서 다른 음량으로 뒤섞여 흘러나오는 소리를 감지해야 한다. 그러면 이 수많은 '비닐커텐' 들은 힘찬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되기도하고, 얼어붙은 흰 암벽으로도 인식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똥무더기'같기도 한 김홍주의 '무제' 작품앞에 서면 '재현의 허구성'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하지 않을수 없게된다. 신문지 위에 그려진 글자같은 그림은 흡사 배설물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서예작품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가까이 보면 봄철 농사를 위해 갈아엎은 밭 고랑을 그린 풍경이다. 서구적 원근법대신 부감법을 차용하고 풍경의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한 그의 풍경은 사실적인 묘사이전에 비현실적인 풍경의 시각적 유희를 선사한다.
'최후의 모더니스트'로 불리는 문범의 작품은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손으로만 그렸다는 이 작품은 캔버스란 무엇인가, 색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작가가 모더니스트의 한계를 돌파하고자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몽환적 풍경으로 보여진다.
이번전시작품중 가장 '풍경화스러운' 공성훈의 작품 또한 웬지 불편한 느낌이다. 19세기 낭만풍경처럼 장대하게 그렸지만 풍경화의 낭만과 이상은 아름다운 분위기가 아니다. 폭풍이 곧 몰아닥칠듯한 풍경속엔 가족이 바다에 돌멩이를 던진다거나, 거대한 암벽밑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대인의 삶을 비춘 하찮은 일상이 공존하면서 불안함을 드러낸다.
서예작품에 똥무더기를 그린듯한 김홍주의 무제는 재현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결국 풍경 또한 예술가에 의해 선별되고 편집되어지는 역설적인 거짓임을 알려준다. 여러갈래로 확장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유동성을 보여주는 이번전시는 '풍경에 대한 사유'전이라고 해야 더 이해하기 쉬울듯하다.
안소연 부관장은 "풍경이라는 단 하나의 관심만을 공유하는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풍경에 대한 사유작품이라는 체험의 수준으로 확장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불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대답이자 연속되는 질문거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풍경화?'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작가들의 기발한 작품과, 그것을 엮어낸 전시기획자의 탁월한 재능에 감동하게 된다. 새로운 방식의 풍경화를 더 풍성하고,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내년 2월 3일까지. 관람료 일반 3천원. 초중고생 2천원. 11월 한달간 수능 수험생은 무료입장할수 있다.1577-7595
손으로 그린 문범의 풍경은 문지르고 칠해 남긴 물리적인 흔적들뿐이지만, 관념산수의 아름다운 낙원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풍경으로 화폭에 생성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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