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글로벌 협업으로 힉스 입자 증명한 C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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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0-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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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스위스 제네바) 이한선 기자·공동취재단=스위스 제네바에서 차로 프랑스 국경 방향으로 20분을 가면 세계 최대 가속기가 있는 유럽 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상징인 둥그런 원형 모양의 지구본이 나타난다.
이 모형은 물질의 근본을 밝히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을 상징한다.
지구본 모형 도로 건너편에는 세계 최대 가속기인 강입자충돌기(LHC)를 운영하고 있는 CERN 본부가 있다. LHC는 둘레만 27㎞에 달한다.
CERN 입구의 지구모형 전시관

◆국경 걸쳐 있는 세계 유일의 연구소

CERN은 가속기와 함께 충돌 입자를 검출할 수 있는 CMS와 ALICE 등의 검출기로 이뤄져 있다.
스위스 CERN 본부에서 프랑스령의 CMS 검출기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차로 20분가량을 더 가야 한다. ALICE 검출기로 가려면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 시설을 방문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위스와 프랑스를 넘나들어야 했다. 도로 중간에 국경 점검시설이 있지만 경비는 없었다.
CERN의 연구원들이 수시로 넘나들면서, 일일이 이들을 확인하기가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국경을 걸쳐서 있다는 사실이 상징하듯이 CERN은 과학계의 유엔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모여 관심분야를 파고 있다.
25일 만난 장 마리 르 고프 CERN 금융·조달·지식이전부문 코디네이터는 "중립적인 나라로 유럽의 중간에 놓이고 연결성이 좋은 곳을 찾다보니 스위스에 설립되게 됐고, 프랑스가 인근에 연구소를 세우고 조인하게 되면서 두 국경에 걸쳐 있는 유일한 연구소가 됐다"며 "LHC도 지하터널 건설비용이 제일 적게 들고 레만 호수를 피해서 설계하다 보니 스위스와 프랑스를 걸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CMS 검출기가 있는 지하 100m로 내려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엘리베이터로 1분10초. 지하에 도착하니 18m 높이의 거대한 CMS 검출기가 자태를 드러냈다.
입자물리 연구에 쓰이는 검출기는 강입자 충돌 시 발생하는 수많은 입자들을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찍듯이 센싱하는 역할을 한다. 이온 충돌을 통해 나오는 입자의 정체와 궤적을 센서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장치가 검출기다.
CMS 검출기는 관리를 위해 11개의 조각으로 쪼개져 있었다. 실제 실험 시에는 이들을 이어 밀폐한 상태에서 진행한다. 검출기는 충돌 이후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입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센서와 보드, 자성체 등으로 만들어졌다.
힉스 입자 발견에 기여한 CERN의 대표적인 검출기인 두 곳은 CMS가 표준모형의 입자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한다면, ALICE는 빅뱅 상태 재현을 통해 입자의 현상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는 등 검출방식이 다르다.
CERN LHC 가속기 항공사진, CMS와 ALICE, ATLAS 등 검출기 위치를 알 수 있다. 가속기 LHC는 둘레 27km에 달한다.
◆글로벌 공유와 협업 통한 연구
CERN의 운영철학에는 공유와 협업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장 마리 르 고프 코디네이터는 "CERN은 오픈소스의 챔피언"이라며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술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 미션"이라고 소개했다.
연구개발을 통한 특허로 번 수익은 분담금에 더해져 운영비로 쓰인다.
마치 대학과도 같은 이곳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원들이 모여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CERN에서 CMS사업단의 연구원으로 파견 나와 있는 조미희 고려대 박사과정 학생은 "자유롭게 연구하면서 수시로 토론이 이뤄지는 등 열정적인 분위기가 좋다"며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연구하는 글로벌 현장"이라고 소개했다.
CERN은 적극적으로 연구를 알리기 위해 춤과 사진 등 예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조미희 연구원은 "CERN은 어려운 과학을 일반인과 쉽게 연계하도록 해주는 방법으로 예술 등을 활용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모두가 같이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힉스 입자 실험적으로 증명한 CERN
 
올해 앙글레르 교수와 힉스 교수가 힉스 입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CERN이 이를 지난해 실험적으로 증명한 덕분이다.
질량을 갖게 하는 힉스 입자는 빅뱅 직후 존재했다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다 강입자 충돌로 빅뱅 직후 상황을 재현하면서 실험적으로 검증이 이뤄졌다.
지난 24일 사무실에서 만난 루디거 보스 CERN 국제협력단장은 "원래 실험을 통해 증명한 사람도 노벨상을 받지만, 3000명의 연구원이 힉스 입자 발견에 참여해 상을 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노벨상 위원회가 상을 수여하면서 CERN을 거명한 것만으로도 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실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CERN의 카페테리아 옆 게시판에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 관련 전 세계의 신문기사 1면들을 붙여놓아 당시의 감흥과 자부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LHC는 직경 3.7m 원형 터널에 있는 가속기로 6조원이 투입돼 2008년 건설됐다.
루디거 보스 단장은 "현재 LHC가 업그레이드를 위해 멈춰 있는 상태로 다시 가동되면 보다 큰 에너지로 보다 높은 휘도와 밀도를 가진 입자를 충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가속기에서 양성자는 7TeV(테라일렉트론볼트)의 에너지로 속도가 높아져 14TeV로 충돌하게 되고, 이 현상을 검출기를 통해 관측하게 된다.
이후 인류가 알고 있는 5% 외에 95%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에 대한 규명이 남아 있는 것도 CERN의 앞으로의 과제다.
CMS사업단 소속으로 현지에서 데이터 분석 등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장성현 박사는 "LHC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힉스 이후의 새로운 입자를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며 "이를 통해 입자 표준 모델을 보다 보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힉스 입자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
힉스가 존재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 이 입자의 성질과 구성 등을 모르고 있어 연구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CERN의 CMS 검출기, 11개의 겹으로 실험시에는 이를 결합한다. <공동취재단>

◆국제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통한 연구 이뤄져

'평화를 위한 과학'을 구호로 유럽 중심의 20개 회원국이 1954년 설립한 CERN은 2300명의 직원들이 회원국이 분담한 연간 1조2000억원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루디거 보스 단장은 "최근 CERN은 유럽 이외의 국가에도 회원국이 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하기로 정책을 바꿨다"며 "한국도 회원국이 되면 연구와 사업 발주, 인력 채용 등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회원국인 우리나라는 연구원 96명이 CMS사업단과 ALICE사업단을 통해 참여하고 있지만 현지의 한국인은 4명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대학과 학교별로 이뤄지던 CERN과의 협약이 국가별 협약으로, 주체가 사업단으로 바뀌면서 여건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다.
검출기를 통해 확보한 입자의 데이터는 방대할 수밖에 없다.
초당 300MB가 생성되는 데이터는 본부 데이터센터에 원상태로 보관하고, 이를 활용해 전 세계로 분산돼 있는 연구자들이 분석하게 된다. 데이터가 워낙 방대해 국제적인 분산처리를 하면서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분석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국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라의 도시를 표시한 지도도 전시하고 있다.
WWW 웹이 이곳 CERN에서 탄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컴퓨팅센터의 직원 데니스 헤거티는 "옆 동료가 데이터 공유와 전송 등을 위해 질문을 입력하면 결과가 뜨도록 한 것이 WWW였다"며 "당시 웹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CERN에서 WWW를 개발했던 컴퓨터도 보여줬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설립했던 넥스트사의 컴퓨터였다. 웹의 탄생은 그리드라는 클라우드형 데이터 분석을 통한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힉스 입자의 실험적 발견도 3000명이 참여해 여러 에너지대로 충돌시험을 한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능했다. CERN의 성과에는 글로벌 협업과 공유의 정신이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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