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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3월 13일 마지막 기준금리를 결정한 후 기자회견에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31일 퇴임한다. 그는 지난 4년간을 '질풍 노도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활발한 대외활동과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교류 확대, 파격 인사를 통한 한은 개혁, 한은법 개정 등 성과도 많았다. 그러나 시장과의 소통 부족과 실기에 따른 통화정책 유효성 상실 등은 임기 내내 비판을 받았다.
◆ 국제 무대에서 한은 위상 드높여…한은법 개정ㆍ인사적체 해소도
김 총재의 가장 큰 성과는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한은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는 점이다.
30일 한은에 따르면 자국통화표시 통화스와프 체결로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 제고, 국제기구에서의 한은 임직원 진출 확대 등은 '글로벌 BOK(한은의 영문표기)' 위상을 강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은은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자금을 지난해 1월 최초로 무역결제에 지원했고 아랍에미리트(UAE)와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등 우리나라와 교역 비중이 큰 주요국과도 통화스와프 체결을 확대했다.
또한 지난해 말 현재 국제기구 및 주요국 중앙은행에만 13명의 임직원을 파견했다. 2010년만 해도 12차례에 불과했던 한은의 국제회의 및 행사 개최건수도 지난해 39건으로 대폭 늘었다. 부서장급 직원들의 국제회의 활동 건수만 86건이었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국제감각으로 김 총재의 금융외교활동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있다. 김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와 금융안정위원회(FSB) 아시아지역 자문그룹 회의 등 5개 주요 국제 금융협의체의 의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금융질서 및 규율 제정과 규제개편 논의 등에 적극 참여했다.
한은법 개정으로 한은의 역할을 재정비했다는 점도 공적으로 평가된다. 한은은 법안 개정을 통해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이라는 책무를 맡게 됐고, 이로 인해 금융기관에 대한 공동검사권이 강화됐다.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한은 역사상 가장 기억할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던 김 총재는 최근 송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은법 개정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고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총재가 가져온 한은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성과중심으로 실시한 파격 인사다.
그는 지난 2012년 1급 직원들이 맡아왔던 핵심 부서인 조사국과 국제국, 거시건전성분석국 국장 자리에 2급 직원을 앉히며 '인사태풍'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63년만에 여성 부총재보도 탄생시켰다. '김중수 키드'라는 별칭도 나왔다.
다만 인사에 대해서는 조직 쇄신을 이뤘다는 평가와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이에 김 총재는 "항상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었지 제가 칭찬의 대상이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나름대로 목적을 정해놓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선을 다했을 뿐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시장과의 소통은 '실패'…김 총재 "받아들일 수 없다"
김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잦아들고 경제가 점차 본래 자리를 찾아가던 지난 2010년 4월 한은 총재로 공식 취임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유로존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경제 성장률은 내내 바닥에 머물렀고 부동산 경기 침체, 가계부채 등으로 통화정책 운용도 쉽지 않았다.
그는 취임 당시 "한은과 시장 간의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면서 "(시장에) 시의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경제주체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전달 과정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임기 내내 '실기(失期)'와 '불통(不通)'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금리 조정 타이밍을 놓치고, 통화정책에 대한 명확한 시그널(신호)이 부족해 시장에서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취임 직후 한은 안팎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을 배경으로 금리 인상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그러나 당시 금통위는 동결을 이어가다 깜짝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4월에는 경기 회복세 지원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불식하고 동결했다가 5월에 인하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 "한은이 기획재정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했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김 총재는 송별 기자간담회를 통해 "통화정책은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하는 것이고, 단기적인 한두 달을 보는 게 아니다"라며 "시장에서의 장기 금리를 맞춘다는 타깃을 갖고 금리 정상화 정책을 취하기 때문에 3월이냐 4월이냐를 얘기하는 실기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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