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조용성 기자 = 중국과 베트남간의 해상영토분쟁이 격화일로를 걷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반중시위가 날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으며, 중국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자국 국민 3000명을 항공편으로 귀국시켰다. 또한 베트남의 조치를 도발로 간주하고, 배후국가로 미국을 지목했다. 베트남 역시 중국과의 국경선을 공격하겠다며 일전불사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1979년 중월전쟁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기습, 당황한 베트남
양국갈등 격화는 중국이 지난 4일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베트남명 호앙사·중국명 시사군도) 해역에서 초대형 심해 석유 시추 장비를 일방적으로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10억 달러의 고가인 축구장 크기의 심해 석유 시추 시설을 이 곳으로 이동시켰다. 중국은 이곳이 고유의 영토로 영유권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이 지역은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해군 함정과 연안 경비대 초계함 등 29척을 급파했다. 중국측은 시추설비를 지키기 위해 선박 80여척과 항공기,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해상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소식이 전해지자 베트남 여론이 들끓었다. 베트남 국민은 전통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왔다. “우리의 석유를 훔쳐가지 말라”는 베트남 시위대는 처음에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격화되어, 중국 글자가 보이는 곳이면 무조건 파괴하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베트남 거주 중국인 사망자가 발생했고, 중국당국은 주중베트남 대사를 초치, 엄중하게 항의했다. 중국은 18일 베트남에 거주하던 중국인 3000여명을 중국으로 복귀시켰다. 17일까지 베트남 내 반중시위로 중국인 2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베트남 반중감정 나날이 거세져
베트남내 반중시위는 앞으로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20개 시민단체들은 18일 국민들에게 반중시위에 적극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반중시위를 용인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응웬 떤 중 총리는 각 통신업체가 전국 가입자들에게 전송한 메시지에서 "(중국의 불법 원유시추에 항의하는) 애국심의 표현은 정당하지만 불법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평화적인 시위참여를 독려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중국의 입장 역시 강경하다. 미국을 방문한 팡펑후이(房峰輝)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15일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과 회동 후 개최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동중국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말한 대로 이행할 것"이라며 "조상이 물려준 땅을 한치도 빼앗길 수 없다"며 강력한 영토 수호 의지를 밝혔다. 그는 "중국의 영토 영해에서 시추행위를 하겠다는 것은 흔들림이 없다"고 전제 한뒤 "우리는 시추행위를 반드시 완성할 것이며 어떤 외부의 간섭과 파괴 행위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베트남의 방해 행위에 대해 중국은 매우 뜻밖이어서 경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중국해에서 많은 나라가 석유 시추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하나의 유정(油井)도 파지 않고 극도의 자제심을 보였다"면서 "그럼에도 일부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유정을 파는 상황에서 시사군도 해역에서 석유시추 작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팡 총참모장은 "다른 나라가 이렇게 많은 유정을 팔 때는 아무 말이 없더니 중국이 하나 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하자원과 해상물류 요충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1960년대 후반이 지역에 매장된 석유가 300억t에 이를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석유자원을 노린 주변 국가들이 저마다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됐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천연가스 매장량 역시 16조㎥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는 해상물류망 거점으로서 중요한 지정학적 입지를 지니고 있다. 전세계 물동량의 30%가량이 이 해역을 통과한다. 물동량은 수에즈운하의 6배에 달한다. 중동산 석유를 실은 유조선이 아시아로 운송되는 데 사용하는 주요한 해상루트기도 하다.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80%도 남중국해를 지난다.
영유권 분쟁의 핵심 지역은 스프래틀리 군도과 파라셀군도다. 스프래들리 군도는 중국에서는 난사군도(南沙群島), 베트남에서는 쯔엉사 군도라고 부른다. 중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대만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80년대 해전으로 베트남 선박 2척이 침몰하고 베트남 해군 70여 명이 숨지며 사실상 중국이 승리했고 중국은 이후 스프래들리 군도의 존슨 암초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촉발된 파라셀 군도에서는 지난 1974년 중국과 남베트남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은 파라셀 군도의 일부 섬을 점령하게 됐다.
◆가장 약한 고리 베트남부터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주변국들과 평화적인 협력을 모색해 왔었다. 지난해 10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가 회담에서 남중국해 자원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7개월 만에 파라셀 군도에서 석유 시추를 강행했다. 중국이 최근 남중국해에서 갑자기 공세에 나서게 된 배경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이 주춤해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중국이 이를 기회 삼아 남중국해 공세를 적극 펼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중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인 왕하이윈(王海運) 소장(少將)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이 다시 미국 및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 최일선으로 부상했다"며 "이에 따라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과 역량은 약해질 수 밖에 없어 중국으로서는 기회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특히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가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느슨한 편이어서 중국이 일부러 약한 고리를 공략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베트남이 약한 고리이기는 하지만, 베트남은 강인한 국민성으로 유명하다. 현재 베트남에서 강한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 역시 국민성과 무관치 않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한무제(漢武帝)에 정복된 뒤 1000여년간 중국의 지배에 저항했다. 결국 972년 독립했고 잇따른 송, 원, 명, 청나라의 침략도 모두 물리쳤다. 특히 이후 프랑스와 100년 가까이 싸워 승리했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도 이긴 나라여서, 민족 자긍심도 높다. 1979년에도 중국과 베트남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과 중국인 탄압 문제로 전쟁을 벌여 각각 2만6000명과 3만여명이 숨지는 등 갈등을 겪기도 했었다.
◆미국의 개입 수위는?
이번 분쟁에 미국이 어느 선까지 개입하는지도 변수다.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전화 통화에서 "최근 남중국해 사태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중국의 석유시추선 출현은 도발적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미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며 "미국은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미군 7함대 소속 기함(旗艦)인 '블루리지' 함은 최근 남중국해에 나타나 중국 전함 두 척의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미군이 남중국해의 중국군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필리핀 등을 순방하며 대중(對中) '포위 외교'를 강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일 분쟁 지역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이라고 했고, 필리핀과는 22년 만에 미군을 다시 주둔시키기로 합의했다. 때문에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에 맞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먼저 치고 나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홍콩 대공보는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기정사실'로 만들려 한다"며 "중국의 최종 상대는 미국"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분쟁을 방관한다면 사태는 중국의 의도대로 흘러가겠지만, 적극적인 개입책을 택해 항공모함이라도 남중국해 인근으로 이동시킨다면 베트남의 반중행보가 탄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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